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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신 Aug 23. 2021

임진왜란과 선조,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국가 존망이 걸린 위기, 군주에 대한 후대의 지엄한 역사적 평가


주말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에 대해 다시 읽어봤습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오버래핑되며 문득 임진왜란을 겪던 당시 임금 선조의 행적이 떠올라서였습니다.


41년이라는 선조의 재임기간 중 임진왜란은 단 7년 동안입니다.

선조가 전란을 격기 전까지 펼쳤던 군주로서의 통치는 공과가 함께 어우러져 단면적인 평가만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존폐가 흔들릴 정도로 큰 위기 상황이었던 임진왜란이 그의 통치기간 동안 발생했고, 그 기간 동안 보여준 군주 선조의 행태는 후대에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본보기로 남았습니다.


선조에 대해 임진왜란에 촛점을 두고 평가를 해 보자면 몇 가지 사항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궁궐과 백성을 버리고, 여차하면 나라  요동으로 도망가려고 피란을 가버린 선조.


(그러나 당시 명나라에서는 수행원 수를 줄이라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앞세워 사실상 선조의 월경을 우회적으로 거부합니다.  결국 전란을 피하려던 탈주 계획도 무의에 그칩니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의 공통점은 국란이 발발하자 즉각 백성을 버리고 도주를 했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그 도주에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 이순신의 전공을 폄훼하고 원균을 치켜세워 충무공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견제하려고 했던 옹졸한 1인자.


- 차일피일 미루던 세자 책봉을 전란이 닥치자 등 떠밀려서 한 뒤, 광해군이 뛰어난 분조활동을 펼치며 비교가 되자 위기감을 느꼈던 못난 아비.


- 그래서 명나라가 정치적인 이유로 광해군의 세자 책봉 승인을 미루자, 그 상황을 내심 반겼던 옹졸한 아비.


- 피란길에 같이 올랐던 신하에겐 후한 평가를, 왜란 극복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죽음으로 싸웠던 의병들에게는 박한 평가를 했던 나쁜 군주.


-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선위를 하지 않고 정치적 긴장과 당파싸움을 조장해 아들 광해군을 궁지에 몬 비정한 아비.


- 명과 종전을 합의하고 퇴각하던 왜병들이 약속을 깨고 진주성을 공격했을 때 고립무원 성을 지키는 백성과 의로운 장수들의 죽음을 외면한 채 아무런 지원 결정도 하지 못한 무능한 임금.


- 그럼에도 왜란의 수모를 겪은 뒤 10여 년을 포함, 총 41년 동안이나 왕의 자리를 지킨 선조.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임진왜란을 바다와 육지에서 이순신 장군과 같이 희생정신 강한 무장들과 병사들 그리고 이름 없는 의병들이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그 명맥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아찔한 생각을 해 봅니다.


또 제 나라 조선을 지키기 위해서 백의종군을 불사하며 나라를 지켜낸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왕과 양반들의 변명과 합리화의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조명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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