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81년생 최수연 CEO 내정자 선정 소식에 붙여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시중에 처음 나온 퍼스컴(퍼스널 컴퓨터, 아마도 일본식 영어가 아닐까 싶습니다.)으로 중앙일보 전산실장님이 강의하는 컴퓨터 강의를 통해서 BASIC 언어를 처음 배웠었습니다. 중2 때는 APPLE II 컴퓨터를 처음 손에 넣고, 밤을 새워가며 모눈종이에 레벨 디자인을 한 게임을 어셈블리어와 베이식 언어로 코딩해서 만들었던 기억도 납니
또래보다 일찍 컴퓨터가 있어왔기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친구들의 컴퓨터 구매에 조언을 하거나 사양을 정해 용산에 조립 PC를 사러 가는 길에 여러 번 동행도 했었습니다.
대학에서 군대를 가기 전인 1, 2학년 때까지는 모든 리포트를 규격 용지에 맞춰 손글씨로 작성해서 제출했던 것이, 복학하고 나자 PC에 폰트 크기, 장평, 자간을 맞춰 제출하라는 조교의 안내가 생경했었습니다.
집이나 하숙방에 개인 컴퓨터가 없는 친구들은 학교 앞 복사집에 손으로 쓴 리포트를 가져가서 장당 얼마를 주고 키 인과 출력을 해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복학생의 잉여 시간에는 독학한 코딩으로 소상공인이나 합기도연맹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나름 학생 신분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일이기도 했지만, 머릿속에서 풀어내는 생각을 코딩으로 옮기느라 몰입해서 즐겁게 밤을 새웠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를 하자, 부서마다 있던 여직원들이 선배들의 수기 품의서를 타이핑하던 시기에서 막 개인용 컴퓨터를 지급받는 시기로의 전환기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입사원으로서 워드(훈민정음)나 엑셀, 파워포인트로 업무용 전산교육의 혜택을 받고 부서에 배치되어 나름 일 잘하는 젊은 피가 수혈됐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당시 새로 만드는 데 관여했던 사내 동호회가 '통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통사사모)였습니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터넷 접속을 낮은 사양의 전화 모뎀과 모자이크나 넷스케이프같이 표준화되지 않은 여러 웹브라우저로 연결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학생 때 경북대 하늘소에서 만든 '이야기'같은 통신 에뮬레이터를 통해 텍스트 위주의 PC 통신으로 시작해서 조금 더 나은 그래픽이 접목된 2세대 PC 통신까지 경험해 봤지만, 그 당시 새로 접한 인터넷은 전 세계가 연결된 거대한 스케일이라 매우 경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문자 위주의 하이퍼링크와 느리게 로딩되는 몇몇 사진이 전부인 환경이었지만, 다양한 언어로 방대해 보이는 정보를 헤집고 다니는 이른바 '서핑'의 재미를 신기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동호회가 유지되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어이없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밀레니엄의 호들갑을 지나 21세기 벽두가 되자, IT기업들이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며 사명에 닷컴을 단 기업들의 주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폭등하는 혼란의 폭등장들이 연출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20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종목도 있었고, 회사에 가도 흡연장소나 휴게실에서 너도나도 주식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벼락 거지가 되는 듯한 상대적인 열패감에 누구라도 돈이 생기면 주식을 투자해야 할 것 같은 광풍의 시절.
하지만 그 시절의 끝은 폭락과 망연자실, 그리고 잇단 자살 뉴스가 이어질 정도로 버블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21세기 초반의 혼란은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컴퓨터 키즈들은 서서히 사회에 적응하며 3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상은 80년대 후반기 학번의 새로운 물결인 IT 혹은 컴퓨터와의 아슬아슬한 앞줄 파도타기의 서사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의 전산실이 갖춰진 세대를 잘 만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또래가 만든 IT의 첫 물결을 얻어 탄 덕분에, 80년대 후반기 학번인 제가 운 좋게 겪었던 개인적인 서사이기도 합니다.
어제 NAVER의 새로운 수장으로 80년 대생 신임 CEO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네이버가 11월 17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글로벌 사업 지원 책임자인 81년생 최수연 책임 리더를 CEO 내정자로 승인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기성세대(여기서는 70년 대생 이전을 통칭할 듯)와 확연히 다른 세대 특성 때문에 서점가에 '00년대생이 온다.'라는 특정 세대를 다룬 책이 스테디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곧 서점가에 '80년대생 임원이 온다.'라는 책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업마다 80년 대생들이 주요 임원과 대표이사 자리를 점유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거대 자본이 대외적인 선전효과를 위해 조기 등판시켰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제 새로운 경영체계와 기업환경의 의도적인 개혁에 대한 요구가 80년대생 임원들의 현실 경영 참여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후반 학번이라고 겪었던 저의 서사도, 위에 언급한 것처럼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환경적 혜택을 후광으로 마치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듯'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임원이나 대표 혹은 정치 현장에서의 리더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80년대생 세대들에게도 아마 비슷한 서사가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세월의 흐름을 역행하기 어렵고 그에 순응한 거대한 조류에 몸을 실어 인생을 살듯이, 80년 대생들이 주도해서 펼쳐가는 사회가 기대됩니다. 지금부터 그들이 만드는 파도에 또 다음 세대가 올라타면서 미래는 열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세대는 유모차에서부터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터치식 UX/UI로 원하는 앱들 사이를 익숙하게 오가며 온몸으로 정보화 기기를 체화하고 자란 지금의 청소년과 유아동들이기 때문에, 아마도 80년 대생들이 이뤄 놓을 기술적인 진보의 물결에 손쉽게 올라타서 더 놀랍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가리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