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인 한프의 시크한 런던 여행 일기, '마침내 런던' 국내 출간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영국의 중고서점 마크스 서점의 직원인 프랭크 도엘과, 미국의 작가인 헬레인 한프가 1949년부터 20년간 주고받은 주문과 청구서에 덧붙인 편지들을 모아 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의 작가인 헬레인 한프는 시나리오와 전기 등 다양한 장르의 책과 글을 쓰는 전업 작가지만 뚜렷한 인기작이 없는 뉴욕의 무명작가였습니다.
희귀본과 절판된 도서를 값싸게 구하고 싶어서 우연히 알게 된 런던의 마크스 서점에 책을 주문하면서 직원들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다소 시니컬한 유머 코드의 그녀가 주문서와 청구서에 덧붙여 프랭크 도엘과 짧은 편지를 주고받는 20년 동안, 일면식도 없는 그녀와 서점 직원,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인간미 넘치는 인연이 이어집니다.
1969년 프랭크 도엘이 세상을 떠나자, 헬레인 한프는 20년 동안 오고 갔던 편지를 모아 책을 엮어냈고, 그 책이 그녀 인생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 하지만 모두 실화이기에 감동이 더하게 됩니다.
편지는 몇 달 걸러 한 번씩 오고 갈 때도 있지만, 긴 세월을 이어가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만남을 원하는 훈훈한 인간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영국 문학에 심취한 헬렌인 한프는 마크스 서점 직원들과의 인연까지 더해지며 런던에 가보기를 무척이나 희망했지만, 넉넉지 않은 그녀였기에 번번이 런던행 계획은 무산되곤 합니다.
특히 1952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맞춰 가겠노라고 해서 마크스 서점의 가족들이 모두 만남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갑작스러운 치과 치료에 모아뒀던 여비를 쓰게 되면서 한없이 미뤄지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공습으로 피폐해진 런던의 복구 시절, 부족한 생필품을 주문서와 함께 보내기도 하며 더욱 돈독해집니다.
하지만 프랭크 도엘이 196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끝내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며 ‘채링턴크로스 84번지’는 아쉬운 결말을 맺습니다.
하지만 197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지 2달 뒤에 영국의 출판사인 앙드레 도이치가 이 책의 판권을 사게 되고 런던 출간일인 1971년 6월에 맞춰 체제비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그녀를 런던에 초대하게 됩니다. 여기에 항공권은 그녀가 나눈 이 책 독자와의 팬레터와 답장에 대한 에세이를 실어 준 잡지사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제공하기로 하면서 드디어 그녀가 그렇게도 그리던 런던을 가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이번에 새로 번역 출판된 ‘마침내 런던’ 책이 나오기까지의 사연입니다.
이 책은 그녀가 드디어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현지에서 프랭크 도엘의 부인과 딸을 비롯해 독자들과 현지 매체들의 대환영을 받으며 머무는 런던의 체류기를 하루하루 일기 형식으로 써 내려간 책입니다.
앞서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었던 저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후일담이나 후속 편 같은 느낌의 반가운 소식 가득한 책이기도 합니다.
시크한 그녀가 그려내는 하루하루의 런던에서의 일정이 웃음을 짓게도 하지만, 중간중간 그녀가 느꼈을 감동과 설렘, 그리고 아쉬움에 같이 몰입하게 되기도 합니다.
가난한 작가로서 뉴욕에서의 팍팍한 삶과 달리, 하루하루 꿈꾸던 런던의 문학적 명소를 새로운 인연들의 환대 속에 방문하며 보내는 꿈같은 체류 기간을 스스로 ‘블룸즈버리 가의 공작부인’(The duchess of bloomsbury street, 이 책의 영문 제목이기도 합니다.)이 된 듯하다고 묘사합니다.
블룸즈버리 거리는 그녀가 런던에서 머문 호텔이 있는 거리 이름입니다.
‘채링턴크로스 84번지’와 ‘마침내 런던’ 두 책은 모두 사람들 사이의 좋은 인연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도 중고서점에서 책을 우연히 얻게 되고 이어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본 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후속작이나 마찬가지인 ‘마침내 런던’의 출간 소식을 신문 서평에서 보고 반갑게 주문해서 읽게 된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이렇듯 뭔가 이 책은 살면서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좋은 인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투박하고 시크한 문체로 그런 매력을 풍기는 이 책을,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권해드리며 이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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