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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신 Apr 16. 2022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고

자본주의 경계에 선 현대 유목민의 삶

네바다주 엠파이어의 석고 광산이 폐쇄되어 우편번호가 말소되었다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노매드랜드.



광산 근처에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생활을 하던 (프랜시스 맥도먼드) 남편이 죽고 일하던 광산이 폐쇄되자 스스로 밴을 꾸며 집을 만들고 유목민의 삶을 선택합니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에 가깝게 그녀의 자취를 쫓아 흘러갑니다.

거의 모든 화면이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담아 인상적인 화면을 선사해 줍니다.

현대사회의 유목민들이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모여서 서로 위로하며 도움을 나누는 집단을 이루기도 하고,  각자 흩어져 기약 없는 유랑을 하다 다시  위에서 만나곤 하는 다양한 인연들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촬영 후기를 보니, 그들 중에 몇몇은 실제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실제 인물들이라고 합니다. 펀에게 자기가 죽으면 친구들이 돌을 모닥불에 던지며 추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던 스완키가 대표적으로 출연한 실제 유목민입니다.


그녀는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병원에서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며 좋은 추억이 있다는 앨라스카로 떠나고, 그녀의 죽음이 전해지자 모닥불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돌을 모닥불에 던지며 그녀에게 곧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들을 합니다.


아픈 상처가 되었던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서로 위로하며 나누는 이야기가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영화 속 유목민의 삶에는 저마다 죽음에 대한 사연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방랑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서 상처를 치유하려는 발버둥처럼 보입니다.

펀이 헤어지고 만나며 정이 들게 된 데이브(데이비드 스트라탄)가 손주가 태어날 아들 내외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 뒤 함께 가자는 청을 에둘러 뿌리쳤지만, 얼마가 지나 약속한대로 방문을 하게 됩니다. 가족의 품에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간 데이브에게 이제 떠나지 않을 거냐는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


데이브는 인연을 함께 이어갈 선택을 부탁하지만, 둘이 한 장소에서 함께 지내기에는 이미 삶의 방식은 서로 평행을 이루며 많은 거리가 생겼습니다.  


데이브의 집 지붕 아래 방에서 잠을 못 이루다 새벽에 다시 밴으로 건너가 남은 잠을 자는 주인공.


유목민으로서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몸에 배어 돌이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길을 나섭니다.  

사랑하던 남편과 가정을 이뤄 정착하여 살았던 추억은 밴에서 홀로 낡은 사진을 보며 곱씹는 과거이지만, 현재를 사는 그녀는 이제 한 곳에 정착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진 유목의 삶을 이어갈 뿐입니다.

영화 속 자연은 스케일이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웅장하고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국유지 사막에 때가 되면 모여 서로를 보듬으며 잠시 동안 집단을 이루다가 헤어지곤 하는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지만, 주인공 펀은 혼자 차를 몰고 사막 가운데 펼쳐진 길을 달리거나 홀로 밴에서 생활을 하며 자연과 대비되는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여실히 나타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근처에 밴의 정박비를 지원해주며 임시 고용을 해 주는 아마존의 거대한 물류센터는, 자연 풍광과는 대비되며 자본주의와 그 안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아마 감독이 멀리 눈이 쌓인 산맥과 사막이 보이는 자연의 스케일에 그나마 비슷한 웅장함으로 화면을 채울 자본주의의 상징을 선택하다가 엄청난 규모의 아마존 물류 센터를 배경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딸을 잃고 지역 경찰과 사회에 울분을 표하는 수단으로 광고탑을 사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쓰리 빌보드’를 통해 처음 보고, ‘노매드랜드’를 통해 다시 만났습니다.


리얼하고 세심하고 우울함과 강인함이 묻어나는 복합적은 표정이 영화 내내 그녀에게 강한 흡입력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로 2021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거머쥔 그녀는,  세계에 존재감을 강력하게 각인했습니다.

노매드랜드는 여우 주연상 외에도 작품상과 감독상도 받았습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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