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났던 그룹사의 회장님 한분은 "일상에서의 사적인 만남조차도 네 사업에 도움이 될 사람인지를 염두에 두고 만나라."는 다소 극단적인 조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목적을 가지고 재단하듯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지향한다는 목적의식을 이야기한다는 전제 하에 조언을 해 준 것이라고 이해는 했습니다.
서점가의 수많은 처세와 자기계발 책들 중에서도 돈을 벌고 싶다면 부자와 점심을 먹으라는 식의 인간관계와 처연한 부의 추종을 밀접한 상관관계로 엮은 책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특히나 축적한 부의 규모가 클수록, 자식 대에서도 잘 관리되어 더 융성한 삶을 후대까지 누리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할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선대에서 이룬 기업들이 후대의 실수나 일탈로 와해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삼성의 경우는 벌써 3대 경영 체계가 되고 있는 국내 대기업이기에 위와 같은 관점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부를 이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훈육에 일정한 방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큰 유산으로,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인맥을 남겨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은 일찍이 카를로스 슬림 멕시코 텔맥스텔레콤 회장이나 스웨덴 발렌베리 일가, 리카싱 홍콩 청쿵그룹 회장과 같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재계 인사들과의 만남 자리에 아들 이재용을 대동해왔습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을 서울대, 게이오대, 하버드대를 거치도록 교육시키며 한미일에 걸쳐 광범위한 학연과 글로벌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이부회장 스스로도 아버지 뜻에 걸맞게 노키아의 칼라스부오 전 CEO, 래리 페이지 구글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에릭 슈밋 전 구글 CEO, 생전의 스티브 잡스 애플 CEO, 버라이즌의 로웰 매커덤 회장 등과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이 부회장은 미국의 주요 기업 CEO들의 비공개 모임인 보아오포럼의 이사를 맡고 있고, 아마존, 코카콜라, GM, 보잉 등 138명의 재계 VVIP로 이뤄진 비즈니스 카운슬 회원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IT업체 CEO들이 만나는 ‘선밸리 미디어 콘퍼런스’는 늘 이재용 부회장이 참석하는 주요 행사 중 하나입니다.
에메랄드 스푼을 물고 태어난 국내 최대 재벌가의 외아들로서, 선친인 이건희 회장의 각별한 교육열과 그에 순응한 본인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 전 세계적인 인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있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라거나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이 부회장의 대외 협력 채널이 결정적인 순간에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거나 위기를 돌파하는 결정적 한방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질 것은 자명합니다. BMW·폭스바겐 대표를 만나 협상을 매듭짓고 전기차 배터리 납품을 이끌었다는 식의 성과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주도적으로 맡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경영 상 중요한 분기점에서 혼자 넘겨야 할 선택의 순간들이 꽤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갤럭시 브랜드의 휴대폰 사업에 관한 구글과의 관계 설정이 그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타이젠 OS를 개발하고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으로부터 일정 부분의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추구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소원해질 것 같았던 구글과 대 타협을 통해 약 10년간 양사의 특허를 공유하는 동맹을 맺기도 하는 등 양사의 밀월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삼성은 타이젠 OS를 완전하게 폐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삼성 기어’ 시리즈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채택함으로써 안드로이드 웨어가 포진하고 있는 해당 분야에 대해서 독자적인 OS 활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가 재작년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코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매우 어색한 분위기로 만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독자 OS로 구글에 독자적인 생태계를 사업 기반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구글 OS를 기반으로 하는 안정적인 환경에 종속되는 현 상태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드러난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구글은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에게 적용해 오던 개방정책에서 선회해서 최근 삼성제품에 탑재된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통제권까지 강화하는 강경 노선을 펴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 한 행사에서 데이비드 버크 구글 자동차용 안드로이드 담당 이사는 "자동차나 TV 등에서 작동하는 안드로이드는 제조사가 아닌 구글이 통제할 것”이라며 향후 구글의 강력한 통제 방침을 공고히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구글의 기존 변화는 향후 삼성전자와 구글의 또 다른 갈등 요인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합니다.
올해 MWC 2016 개막 전야에 펼쳐졌던 삼성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VR 분야의 협력을 내세우며 깜짝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Samsung Galaxy Unpack 2016에 깜짝 등장한 마크 주커버그
삼성전자가 노력을 기울여 온 다각적인 협력관계의 성과를 대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충분한 임팩트가 있는 연출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삼성은 최근 분기까지 수조의 이익을 지속적으로는 내고는 있지만, 최대 매출처인 스마트폰 사업 분야에 대한 미래 성장의 불확실성에 대해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이제는 하드웨어만 잘 하는 기업으로서는 삼성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을 확고히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은 올해 미래기술 육성사업 지정 테마 지원과제로 스마트기기를 위한 인공지능, 급속 충전 전지, 기능성 외장 소재 등 3개 분야, 12개 과제를 선정해 발표습니다.
이 중 인공지능 기술은 총 12개 과제 가운데 절반인 6개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전략적인 사업 분야의 핵심으로 선정한 것입니다.
물론 인공지능 분야는 현재 구글이 주로 육성하는 기술분야와 100% 겹치는 것이어서 해당 분야를 육성하고자 하는 삼성전자는 여전히 구글과의 미묘한 경쟁관계를 피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3세에 물려주고자 했던 인적 네트워크가 이와 같은 복잡 다난한 경쟁 관계의 파고를 잘 넘어서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끄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