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귀무덤을 아시나요?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백성의 원과 한의 현장

by 최종신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장수들이 전공을 증명하기 위해 베어간 조선 백성들의 귀와 코를 매장한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 교토의 귀무덤을 아십니까?

국가가 힘을 잃고 무능할 때 백성이 어떤 수난을 겪는가를 절절하게 전해주는 귀무덤은 아쉽게도 마을 놀이터 (이름만 '귀무덤 공원') 옆에 잡초가 무성하게 방치 상태로 있었습니다.

아이들 놀라고 만든 놀이터 이름에 '귀무덤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 의미에 비해 너무 무덤덤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덤의 경계는 최소화되어 있어 주위 가옥들과 봉분이 맞닿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마을은 귀무덤과 처음부터 마치 하나였던 듯 무심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귀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학자들 중에는 코를 베어간 코무덤이며 훨씬 덜 잔혹한 귀무덤이라 불리는 것 자체가 실체를 숨기는 기만이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귀가 되었던 코였던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이런 잔혹한 수탈이 가까운 일본의 침략으로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는 현장이라는 것의 의미가 깊게 다가옵니다.

귀무덤은 동네 한 귀퉁이에 별다른 관리를 받지 못하고 서 있습니다.

방문했을 때도 잡초와 들꽃들이 무성하게 자란 귀무덤은 한눈에 봐도 버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누군가 가져다 놓았을 생화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어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입구에는 까마귀가 오니 제단에 음식을 가져다 놓지 말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나마 자물쇠가 잠겨 있었습니다.

귀무덤 앞에 서니 더럭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귀무덤에 교토시 명의로 세워진 귀무덤의 안내 간판에는 일어와 한국어로 병기되어 있습니다.

귀무던 안내간판의 설명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무덤은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이른바 분로쿠 게이초의 역(한국 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복 대신에 조선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영에 따라 이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귀무덤(코무덤)의 유래이다.
귀무덤(코무덤)은 사적 오토이 토성들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련 유적 중에 하나이며 무덤 위에 세워진 오륜 석탐은 1643년 그려진 그림지도에도 이미 그 모습이 나타나 있어 무덤이 축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건되었다고 추정된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폐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교토시"

설명이 역사적 사실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귀무덤이 위치해 있는 길에서 고개만 돌리면 아주 가까운 길 끝자락에 이렇듯 거대한 신사의 입구가 보입니다.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기린다는 도요쿠니 신사입니다.

이 신사가 지척에 매우 거대한 규모로 있어서 분기를 느끼게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상징이 지척에 있으면서, 서로 상반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교토를 가시게 되면 꼭 귀무덤을 방문하셔서 아픈 역사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절절한 과거로부터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또 교토의 귀무덤에 대해 우리의 정부도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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