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가정
A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을 쓴다. B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물을 흘린다. C는 머리카락을 뽑는다. D는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E는 집안에 틀어박혀 잠만 잔다. F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G는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스트레스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이미 조절 가능한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해석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는 점은 똑같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우는 사람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위로를 받고, 악을 쓰고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병원으로 내몰린다. 사실 우는 사람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병원에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그 반응이 격하지 않다고 해서 타인의 스트레스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고, 타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놓고 (살인, 폭행, 절도 등 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왈가왈부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나의 실수
스트레스에 대한 아들의 반응은 늘 폭발적이어서 엄마인 내가 보기에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그때 그냥 두었어야 했는데, 내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개입을 하고 말았다.
1. 처음엔 최대한 아들을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당신이 짐작하는 대로 이 방법은 실패했다.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들은 계속 몰려왔고, 아들은 점점 무력해져 갔다.
2. 두 번째 방법으로 우아하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1부터 10까지 세어보아라, 심호흡을 해봐라, 달리기를 해보아라, 차리리 시원하게 울어라, 잠을 자거나 쉬어봐라, 맛있는 간식을 먹어보아라, 음악을 들어 보아라, 등등. 이 방법은 통했을까? 아니다.
아들이 소위 건강하다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해보려 하자, 나는 간사하게도 그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외면했다.
결국 아들의 스트레스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깨달음과 해결책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다. 아들의 스트레스는 아들 거다.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그가 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정해줄 수는 없는 거다.
어젯밤 일이다. 내내 놀다 밤이 되어서야 숙제가 생각난 아들은 피곤하고 힘들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언제나처럼 앞선 두 가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럼 숙제하지 말고 그냥 자.” 라고 섣불리 말함으로써 첫 번째 실수를 했다.
숙제 안 하면 안 된다고 대꾸하는 아들에게 “그럼 소리 지르지 말고 울지 말고 심호흡 한번 하고 해.” 라고 훈수를 두는 두 번째 실수까지 연달아 저질렀다.
다행히 아들은 엄마의 두 가지 실수를 무시한 채 소리를 지르며 숙제를 했다. 중간에 미친놈처럼 울면서 피아노 몇 곡을 치기도 했다. 숙제를 다 해낸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렇다. 스트레스받고 있음을 확실히 내보이고 그 스트레스를 다루는 그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저 믿고 잘 지켜봐 주는 게 어미의 역할이다.
이상, 내내 노느라 미뤄둔 학습지 숙제 3장 때문에 까무러칠뻔한 아들을 둔 엄마의 반성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