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이다
명품 바디크림을 선물로 받았다. 바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고급스러운 향에 취해 한통을 살뜰히 비우고 재구매를 하려 침대에 누워 인터넷 쇼핑 창을 열었다.
‘십삼만 원~’이라고 입 밖으로 중얼거렸는데 (나이가 드니 혼잣말 같은 추임새가 는다), 옆에서 드라마에 심취해 있던 남편이 “뭐라고!” 하며 벌떡 일어났다. 돈 소리에는 귀가 열려있나 보다.
아차 싶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응, 십삼만 원.” 하고 대답했다.
두두다다 잔소리가 시작됐다. 무슨 로션이 그렇게 비싸냐. 나는 오백 미리에 이만 원짜리를 쓴다. 향은 날아가면 그만인데. 보습력은 저렴이와 고가제품에 차이가 없다더라. 아니 오히려 저렴한 제품을 듬뿍 바르는 게 더 낫다더라. 현명한 소비를 해라.
아우, 귀 따가워.
육아휴직 3개월을 제외하고는 일을 쉰 적은 없으나 주 6일에서 주 5일, 주 5일에서 다시 주 3.5일, 그리고 주 2일까지 근무일수를 줄여오면서 내 월급은 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열심히 일하던 내게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 손길이 더 필요해졌기 때문에 그때그때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다.
일을 줄이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씀씀이였다. 소비욕구가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몇몇 품목은 돈이 좀 드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월급이 1/3로 줄어든 상황에 남편이 세모눈을 하고 나의 소비생활을 바라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나 같은 고급 인력이 적게 일하는 이유는 다 아이와 가정을 위해서니 무얼 사든 터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덜 버는 만큼 당신이 메꿔야 할 것이라고 남편에게 미리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역시 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고작 로션으로 잔소리를 듣고 앉아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사실 ‘십삼만 원’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육성으로 새어나간 것은 너무 놀래서였다. 지인의 작은 선물이 이렇게 비쌀 줄 몰랐다. 분에 넘치는 듯하여 어느 구석에서 아껴야 이 좋은 걸 또 써볼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려 했는데, 남편의 반응은 너무 즉각적이고도 직설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난 남편에게 토라져있다. 어디 한번 달래 보시지. 훨씬 많은 돈을 써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