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어머니는 걱정이 아주 많으신 편이다.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키워내셨으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그 세월 동안 잠 한번 푹 못 주무셨던 분이다.
그 마음을 아는 자식들은 몸이 아파도 서로 쉬쉬하며 최대한 엄마 걱정을 안 시키려고 하였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10년의 세월 동안엔 그러했다.
그 와중에 하나뿐인 며느리의 발목이 댕강 부러진 것이다.
이 철없는 며느리는 누나가 6명인 아들을 데려가준 은인이었으나 '서울깍쟁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과일 하나 못 깎고, 음식은 먹을 줄만 알았으며 심지어 입맛도 까다로워서 전라도의 진한 맛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삿날 시댁에서 돈가스를 찾았다.
몸도 약해 명절을 쇠고 올라가면 며칠씩 앓아누웠다.
바쁘기는 좀 바쁜가, 주말에도 일을 해서 명절과 생신에만 겨우 얼굴을 비췄다.
그동안 이러한 단점들을 인내해 주신 시어머니기에 나 역시 의리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발목골절에 대해 비밀로 하기로 한 것이다.
1주일에 한번 꼴로 꾸준히 전화를 드렸던 나는 비밀이 생기자 더 이상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태연한 척 연기할 자신이 없어 전화기를 들었다가도 내려놓았다. 이렇게 뭔가 티가나는 비밀을 한 달이 넘게 꾹꾹 눌러 담고 있었는데, 남편이 얼마 전 어머니께 고백을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전달받자마자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 어머니~ 하하하. 저 다친 거 들으셨어요?
시어머니: 에고, 미안하다, 아가.......
정말 깜짝 놀랐다.
어쩌다 다쳤는지,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는지는 단 한 번도 캐묻지 않으셨다. 본인은 며느리가 아픈 것도 몰랐다며 그저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머니도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을 텐데.......
아들이 다리 부러진 며느리 병간호에, 육아에, 일까지 하느라 고생하는 것도 뻔히 다 알고 계시면서도 오로지 내 걱정만 하시다 전화를 끊으셨다.
자식 7명을 잘 키운 내공은 이렇게 드러나나 보다.
걱정하시지 않게 잘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