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허증(氣虛症)과 자존감
상상해 봅시다.
야근을 마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각, 집으로 향하는 길.
회의 시간에 먹은 초콜릿쿠키 한 조각으로 저녁을 대신했더니 허기는 가시지 않고, 입안에는 단내만 맴돕니다.
하필 이럴 때 옆 동료는 연차를 냈습니다. 일은 쏟아지고 상사의 눈치는 더 짙어지는데, 아무렇지 않게 휴가를 쓰는 동료에게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그 단호함이 부럽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자 머리가 아파옵니다. 최근 부쩍 심해진 두통이 혹시 뇌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건강검진을 예약했지만, 문득 더 정밀한 검사를 받을 걸 그랬나 후회가 됩니다. 하지만 그럴 돈도 없습니다. 쥐꼬리만 한 연봉을 주면서 자정까지 야근을 시키는 회사, 이직은커녕 "너 같은 스펙으로 어디 가겠냐"라고 말하던 옛 연인의 말이 생각나 슬퍼집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감정이 떠오르는 건 본능의 영역이지만, 그 감정을 조절하고 품어내는 건 이성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바닥난 상태에서는 감정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결국 그 감정에 스스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기허(氣虛)라고 부릅니다.
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마음의 균형을 지탱할 힘조차 없을 때는 사소한 일에도 민감해지고,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나는 안 될 거야’ 하고 포기하게 되죠.
그렇게 시도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자책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결국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됩니다.
이때는 자존감을 회복할 에너지조차 없기 때문에, 더 깊은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지쳐 있을까요?
아래는 한의학 임상에서 자주 활용되는 기허 체크리스트입니다.
5개 이상 해당된다면, 지금 내 몸은 기가 부족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쉽게 피로하고 기운이 없다
숨이 얕고 자주 답답한 느낌이 든다
감기에 자주 걸리는 등 면역력이 약해져 있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하는 게 귀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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