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수치는 무엇일까?
최근 옮긴 팀의 이름을 처음 들으면, 뭔가 있어 보인다.
미래의 수익을 계산하고, 투자 대비 효과를 예측하며,
기업의 방향을 조율하는 정교한 브레인처럼 들린다.
그러나 내가 몸 담고 있는 이곳은 달랐다.
리포트를 위한 숫자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현실이 아니라 의도된 결과를 위해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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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늘 말한다.
“투자효과가 수치로 나와야지.”
“이걸로 어필할 수 있겠어?”
누가 보면 사업을 투자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단순 장비나 시스템 같은 소모품 구매 건들이다.
이런 것일수록 투자효과는 애매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정작 수치는 빈약한 근거로 설계됐다.
수익 발생 시점은 미정이고, 비용은 일부러 줄이고, 리스크는 보고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예쁘게 포장된 수치들만 남는다.
그 숫자들은 보고서에 올라가고, 회의에 쓰이고,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결론이 된다.
역시 재경팀이 아닌 전략 기획팀 산하에 있어서일까?
이 조직은 무슨 조직일까? 결국, 가장 상위의 리더의 성향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그 안에 진실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실무자의 의심도, 데이터의 허점도, 리더가 원하는 결론에 걸맞은 숫자로만 채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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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화가 오래되면, 사람은 달라져도 결과는 같아진다.
왜냐하면, 결국 조직의 DNA는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DNA는 리더의 기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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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정직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숫자를 만드는 일은 늘 껄끄러웠다.
오늘도 나는 수익을 ‘예상’하고, 효과를 ‘창조’하며
누군가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치를 만든다.
그 숫자들은 결국,
리더가 보고 싶어 한 숫자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