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01
오늘은 너와 단 둘이
미리 예약해 둔 뮤직바에 가는 날이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기대하고 설레는 감정만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오전에 키우는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야 했다.
5월 중순부터 걷지 못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까운 동물병원에 갔다가 낫질 않아
예전 항암치료를 받았던 큰 동물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날 우리의 강아지는 IMPA(면역세포를 스스로 공격하는 병)를 진단받았다.
열이 40도가 넘었고 온몸(관절)이 부어있다고 했다.
너와 나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온 즉시 눈을 마주쳤고 울상을 지었다.
2초의 눈빛으로 깊은 대화를 했다.
몰랐다.
그렇게 혼자서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미안했다.
검사비용 때문에 겁먹어 검사를 미뤄온 내가 너무 미웠다.
11시부터 14시까지 기나긴 기다림이었다.
물론 우리 강아지가 제일 힘들었을 거다.
예쁜 옷을 갈아입으며
마음가짐도 함께 갈아 끼웠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의 저녁 데이트를 기다렸으니까.
무거운 마음은 집에 고이 개어둔 채
들뜬 마음으로 뮤직바로 향했다.
기대를 한껏 안고 뮤직바에 들어서자마자
큰 화면과 차분한 조명,
스피커가 내뿜는 노래에 흥분되었다.
나는 갓파더 칵테일을 마셨고
너는 시그니처 칵테일을 마셨다.
허브향이 나는 칵테일이었다.
무엇을 마실지 몰라 함께 골라달라는 네가 참 사랑스러웠다.
뮤직바에서는 4곡의 음악을 신청할 수 있었다.
1. Sweet Insomnia - Gallant
2. 사랑은 작은 빗방울처럼 - Kid Wine
3. Let Me - Crush
4. 감아 - 로꼬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갓파더와
위스키를 마시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네모나고 작은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는
그 크기에 무색하게도 내 귀와 심장을 마구 때렸다.
뮤직바 특성상 수다는 금지되었기에
너와 카톡으로 대화했다.
'좋다', '행복해', '다음 주에 또 오자'
행복해하는 너의 모습에
내 입꼬리가 양 쪽 옆으로 찢어져
귀에 닿을 뻔했다.
지금 너의 모습을 보듯
너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너의 사랑스러운 이 모습을 자주 보지 못한 것 같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찡했다.
너의 신청곡이 중간중간 나왔다.
처음 듣는 노래들이었다.
이상하게도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너의 신청곡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너에게 내 노래의 취향을 자주 알려준다.
내 취향의 노래를 너의 플레이리스트에 몰래 넣어두기도 한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다.
충격이었다.
11년 동안 만나고 있는 내 사람의 취향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너의 취향을 자주 궁금해하고 자주 물어보리라 생각했다.
내가 알아줘야 하는 너인데
막상 너를 잘 모르고 있는 나에게 실망했다.
(실망했다고 표현하면 네가 분명 싫어하겠지.)
너는 콜린베일리의 노래를 좋아한다.
너와 참 잘 어울린다.
나와 이탈리아에서 이 노래를 꼭 듣고 싶다는 말도 덧붙인다.
화면에서 콜린베일리가 자전거를 타며 노래를 부른다.
사랑스럽다.
저 파마머리 가수가 아니라,
이 노래를 나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듣고 싶다는 네가 사랑스럽다.
너의 그 소원이 소중했다.
꼭 이뤄주리라.
나는 오늘 또 한 번,
너를 아직 너무 사랑하고 있구나.
가슴 깊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