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뜨리기

by 최한

당신의 마음은 안온한가요?

세상이 아름답고 삶이 재미있나요?

숨 쉬기에 편안한가요?

겨울이 오는 것이 설레나요?

연말이 기다려지나요?


부럽습니다.


저는 평온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었고 삶의 이유를 못 찾겠습니다. 숨 쉬기가 불편합니다. 세상의 산소를 제가 소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이 설레지 않습니다. 눈이 쌓인 예쁜 풍경은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가올 매서운 바람이 나를 할퀴어 갈기갈기 찢어놓을까 봐 두렵습니다. 아니요. 차라리 바람이 저를 아주 작게 찢어서 하늘 높이 데려가버리면 좋겠습니다.


이런 감정들에 버틸 수 있는 심지가 얄팍해졌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휘고, 언제든지 부러질 수 있습니다.


안온해질 수 있을까? 숨 쉬기 편안해지고 계절의 변화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기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먼지처럼 작은 저는 이처럼 큰 세상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화려하게 핀 꽃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여름날 강렬한 햇빛을 받을 자격과, 떨어지는 낙엽에 감정을 느낄 자격이 없습니다. 날카로운 바람에 상처받을 자격조차 없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제가 세상에 잘못 떨어졌습니다. 길은 한참 전에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헤매지 않고 멈춰서 주저앉았습니다. 살아낼 방법을 찾지 못해 포기합니다.


저는 스스로 심지를 마구 부러뜨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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