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15
나는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 손에서 자랐다.
원체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며 맞벌이로 인해 부모님과 보낸 시간이 없었다. 가끔 여행을 갔던 날이 떠오르긴 하지만 행복에 취해 웃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이었고 대화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길을 가다 우연히 칼국수를 파는 식당을 지나친 적이 있다. 그 안에는 엄마와 딸이 칼국수를 나눠먹고 있었는데 그 장면에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엄마랑 단 둘이 밥을 먹을 날이 올까? 물음을 던졌지만 고개를 저었다. 엄마와 단 둘이 밥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입에 음식을 꾸역꾸역 쑤셔 넣고 분명 체할 것이다.
기억나는 유년시절에는 아빠가 늘 집에 없었다. 두세 달 간격으로 가끔 집에 찾아와 엄마와 싸우고 내 방바닥에서 주무셨다. 어느 날 침대에서 자다가 아빠 등 위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죄송하다고 말하는 나를 보는 아빠의 표정은 경멸이었다.
어른들은 몰랐겠지. 눈빛 하나만으로도 아이가 자신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느낀다는 것을.
동생과 나는 툭하면 싸웠다. 동생만 살뜰히 챙기는 엄마에게 질투를 느꼈는지 싸울 때마다 동생을 때렸다. 아빠와 엄마에 대한 불만을 죄 없는 동생에게 쏟아부었다. 나에게 맞아 엉엉 울며 집에 놓인 전화기로 달려가는 동생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쓰리다.
그때 네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엄마에게 거는 전화 한 통이 었을 텐데, 득달같이 달려들어 전화선을 뽑고 다시 너를 때리는 내 모습을 떠올리니 너에겐 내가 괴물이었겠구나.
여느 집 남매들과 같이 투닥거렸을 때 엄마는 늘 나만 혼냈다. 체벌의 강도는 어린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엄마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나타난 악마라고 생각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밖으로 쫓겨났다. 누가 지나갈까 봐 겁이 났다. 나는 어린 나이에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양팔로 몸을 감싸고 허벅지를 조여 자그마한 팬티를 가리려 애썼다. 영하의 날씨에 턱을 열심히 부딪혀가며 추위와 싸웠다. 신발조차 신지 않아 발은 시린 느낌을 지나 따가울 정도였다.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찾다가 보일러 기기가 놓여있는 창고에 들어갔다. 팬티만 입은 나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안심했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쥐들을 구경하며 수십 번 생각했다.
'없어지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나는 그 집에서 가위에 자주 눌렸다. 어느 날은 너무 무서워서 용기를 가득 안고 엄마에게 오늘만 같이 자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엄마는 아빠와 같은 경멸의 눈빛으로 쏘아보며 나의 공포를 하찮게 만들었다. 그날은 가위에 눌릴까 봐 무서운 마음이 아니라 엄마의 눈빛에 잔뜩 상처받은 마음으로 잠들지 못했다.
집에서 또 쫓겨났다. 그날은 다행히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고 눈까지 내렸다. 집 근처에서 엄마가 부르길 기다리는 것이 싫었다. 소심한 반항심으로 300미터 정도 떨어진 슈퍼마켓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나를 발견한 이웃 아주머니가 외투를 챙겨주었고 함께 근처 시장에 다녀왔다. 아주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하던 중 엄마를 마주쳤는데 울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집 반대편에서 마주친 것을 보니 나를 찾으러 다닌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감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 지붕 아래 살지만 남인 듯 살다가 6학년 때부터 할아버지댁으로 이사해 함께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삶도 좋은 기억은 없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자취를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가족들과 더 멀어졌다.
주기적으로 엄마와 아빠를 만난다. 둘은 결국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서른이 넘은 나는 아빠와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든 아빠든 단 둘이 식사를 할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어릴 적 나에게 대했던 행동들을 떠올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부모가 처음이었고 어린 나이였으니 나도 그들의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결론은 아니다.
아직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처량하고 불쌍하다. 작고 여린 아이가 너무도 외로워해서 내가 기억해줘야만 했다. 보일러실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다가가 따듯하게 안아줘야했다.
안녕, 난 너야.
영원한 네 편이야.
외로워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