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

에세이_26

by 최한

유년 시절, 우리 가족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뒤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 홀로 남겨져 어머니는 겨우 스물여섯,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다.


그 시절 여성은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서늘한 반지하방에서, 하루 세 시간도 채 못 자며 구리선을 연신 감았다. 위잉- 위잉- 재봉틀처럼 생긴 기계의 소음이 우리의 자장가였고, 때로는 알람이었다.


스물여섯, 젊은 어머니의 고운 손은 갈라지고 군데군데 피가 배었다. 밴드는 금세 떨어져 접착력 강한 하얀 테이프로 손가락을 칭칭 감아야 했다. 하얀 테이프가 새까맣게 변하고 손톱이 깨져가는 어머니의 손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한동안 저녁마다 치킨을 먹었다. 상처 난 손으로 음식을 하기 힘드셨을 어머니는 우리가 좋아하는 치킨으로 긴 시간을 버텼다. 세 달 넘게 치킨을 먹은 기억 때문인지 지금의 나는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해, 어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다. 웃풍이 드는 얇디얇은 철문 너머로 들이닥칠지 모를 위험에 떨면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밤들이 기억난다.


열 살이던 나는 여섯 살 동생의 식사를 책임져야 했다. 밥 짓는 법을 익혔고, 달걀프라이와 김치볶음밥 같은 간단한 요리도 해냈다. 어느 날은 밥전을 만들고 싶었는데, 겉모양은 그럴듯했지만 쪼개 보니 밥알 사이로 밀가루가 쏟아져 나왔다. 여섯 살 동생은 그걸 맛있다며 연신 삼켰고, 나는 버리면 아깝다는 생각에 말리지 못했다. '설사하면 안 되는데..' 걱정만 하며.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간장게장을 사 오셨다. 게장은 그 시절에도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마음으로 그것을 사 오셨을까. 어머니가 없어도 밥을 잘 챙겨 먹는 우리가 기특해서 주는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어린 우리가 안쓰러워서였을까.


열 살과 여섯 살의 우리는 간장게장을 제대로 먹을 줄 몰랐다. 이로 씹어서 살을 쪽쪽 빨아먹는 방법을 몰랐다. 우리는 어머니가 잘라둔 간장게장에 보이는 살을 젓가락과 포크로 살살 빼먹었고 성에 차지 않아 간장 국물에 밥을 비벼먹어 배를 채웠다.


먹은 게장을 처리하는 법도 몰랐다. 쓰레기봉투에 넣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싱크대에 올려두고 물을 살살 끼얹었다. 게장의 색이 간장에 들어가기 전의 색처럼 하얗게 변했다. 나름대로 깔끔해 보인다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방에 들어와 숙제를 했다.


늦은 밤, 어머니가 귀가하셨고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보시는 말에 그랬다고 답했다.


숙제를 하던 중, 문 너머에서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간장게장을 먹고 있었다. 우리가 먹다 남겨 씻은 하얀 간장게장을.


간장게장이 싱겁다고 말하면서도 배고픈 배를 채우려 허겁지겁 식사하시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머니를 바라보는 열 살의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이상한 감정이 생겨났다.


몇 년이 지나 나는 어머니의 그 나이를 넘어섰다. 아직도 간장게장을 보면 스물여섯 어머니의 멋쩍은 웃음이 생각난다. '싱거운 간장게장을 사서 미안해. 엄마도 싱거울 줄은 몰랐어. 다음엔 더 맛있는 게장으로 사 먹자.'라고 얘기하는 듯한 어머니의 웃음이.


상심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다. '제가 물을 뿌려서 싱거운 거예요.'라고 말했더라면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그랬구나." 하면서 안도의 웃음을 보이셨을까.


이제 어머니의 얼굴엔 주름이 깊이 남았다. 어머니의 주름 잡힌 웃음이라도 오래 보고 싶어 연락해 본다.


"엄마, 간장게장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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