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37
고모, 왜 그랬나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가 20살 때 헤어지셨어요. 그 때문에 저는 동생을 데리고 자취를 시작했고, 부족하지만 동생에게 부모님의 역할을 하려 애썼어요.
그때부터 저는 부모님의 역할뿐만 아니라, 며느리 역할까지 해야 했어요.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를 위해 매년 3번 음식을 준비했죠. 그동안 불만 없이 묵묵히 해내다가, 스물다섯 살 때 할머니 제사일에 맞춰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마음이 힘들었어요. 엄마가 보고 싶었고, 이런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제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때, 여행 중에 고모가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너 미쳤구나?"라고 말했죠.
5년 동안 고모는 할머니 제사 때 볼링을 치고 늦게 참석하셨고, 제가 만든 전을 안주 삼아 아버지와 술을 마셨으며, 야무지게 챙겨 가시기도 했죠. 그때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아버지를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내가 음식을 해야 아버지가 힘들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홀로 남은 아버지가 불쌍했기 때문이에요.
그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한 번쯤은 저에게 자유를 주신 거겠죠. 그런데 고모는 저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잘못한 일이구나' 싶었고, 잠시나마 자유를 꿈꿨던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고모, 왜 그랬나요?
얼마 전, 저는 아버지에게 전세사기에 당했다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잘못해서 당한 일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숨기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고모를 만났을 때, 고모는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전세사기 당했다며?"라고 말하면서 그 말투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 후, 고모는 덧붙였어요. "전세사기 안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때, 저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다른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며 "나는 절대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겨우 버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고모의 말은 저를 또 한 번 좌절하게 만들었어요. 내가 고모의 친조카가 맞나, 싶었죠.
착한 저는 고모에게 살펴봐야 할 사항 몇 가지를 말했어요. 하지만 고모, 꼼꼼히 살펴보아도 당해요. 저도 꼼꼼히 살펴봤지만 피할 수 없었어요. 고모가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위로를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고모, 왜 그랬나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고 아버지는 홀로 할아버지를 모셨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집안을 돌볼 수 없었고, 아버지는 잦은 출장으로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는 쓰레기와 빨랫감이 돌아다니고, 바닥엔 머리카락과 각질이 쌓였죠.
자취를 하는 저는 한 달에 한 번, 가족끼리 모일 때 아버지의 집을 정리했고 가족을 맞이해 식사를 했어요. 고모가 저에게 말했죠. "야, 네 아버지 집 좀 치워라. 고모부 데려오기 쪽팔려."
엄연히 말하자면 그 집은 할아버지 명의였고, '네 아버지 집'은 고모가 말한 대로 고모가 해당되는 집이었어요. 그런데 왜 제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착한 저는 속으로만 불만을 얘기했죠.
그리고 고모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상처를 받으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고모는 언제나 저에게 많은 것을 바랐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 집 리모델링을 저에게 시켰고, 심지어 말투 하나까지도 고모가 원하는 대로 바꾸라고 했죠.
고모, 저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에요.
지난 추석, 비로소 14년 동안 쌓아온 마음을 터뜨렸어요.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은 크고 무거워서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기가 힘들었고, 때문에 울컥거리는 목소리로 쏟아냈어요. 당신에게 차갑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성을 잃고 엉엉 울며 서러움을 토한 것에 후회가 남아요.
이성을 잃은 모습 때문일까요? 서러움을 토하는 저에게 "그런 적 없는데?"라고 반복하는 고모의 태도가 참 원망스럽습니다.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고모는 저에게 아무 연락을 하지 않네요.
고모는 제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오히려 독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아, 한 가지 도움을 받은 점이 있어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게 되었어요.
제 인생에서 삭제해도 무방한 당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착한 제가 고모의 연락에 웃으며 받아줄까 봐, 글로 남겨 마음을 굳게 다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