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36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진 후, 15년 동안 가족 행사에서의 요리는 내가 도맡아 해왔다. 그래서인지 며느리들이 겪는다는 명절 전후의 스트레스가 내게도 늘 따라왔고, 그런 와중에 음식을 하지 않고 가족 여행을 떠나는 집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설 명절을 한 달 앞두고, 내 마음은 벌써부터 시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는 꼭 전의 종류를 줄이겠다고 다짐하며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근황을 나누던 중, 나는 "이번 명절에도 음식 할 거지?"라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첫 설날이라, 당연한 듯한 말투였다.
내던진 물음에 답변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마음에 물음표가 찍혔다. 7초쯤 흘렀을까.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망설이며, 미안한 듯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번엔 여행 갈 거야."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설 명절에 음식을 하지 않고 여행을 간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물었더니, 아버지는 고모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하셨다.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게 생각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동생과 나에게 상의도 없이 여행을 결정한 게 서운했다. 동시에 '아버지에게 가족은 나와 동생이 아니라 고모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말하시던 아버지의 그 말이 떠올라, 서운함이 더욱 커졌다. 아무렇지 않게 "잘 생각하셨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 들어 부쩍 아버지와 고모가 자주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며, 그들의 관계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혼자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의 외로움을 고모가 달래주는 것 같아 고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명절, 가족이 아닌 고모와 보내기로 했다는 사실은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나와 동생에게 미리 알려줬다면 서운함이 덜했을 텐데.
전화를 끊고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 마음속에선 계속해서 서운함이 밀려왔고, 그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거실로 나가 찬물을 마시던 중 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너는 나를 보며 살짝 안아주었다. 울면서 아버지와의 대화 내용을 얘기하자, 너는 부드럽게 다독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잘못하셨어. 미리 얘기해 줬어야지. 우리 00이 혼자 있어야 하는 거 아시면서." 너의 말에, 나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왜 우는 걸까?
바라던 대로 음식을 하지 않는 여유로운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엇이 이토록 서운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고모와 가까워진 아버지가 서운한 걸까? '가족'이란 구성원에서 내가 아닌 고모가 더 중요한 존재처럼 느껴져서 그런 걸까? 아버지의 일상을 내가 아닌 고모와 나누는 모습이 아쉬운 걸까?
나는 아버지를 귀찮아하면서도, 사랑이 다른 곳으로 향할 때마다 서운해하는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참 이기적이고, 지독한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