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41
문득 중학생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하교 후, 집에 혼자 남아 부모님과 함께 쓰던 옷장을 뒤졌다. 초등학교 6학년,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 온 그때, 옷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 일기장은 엄마가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록이었다.
내 기억 속에 그 일기장은 아빠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것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일기장을 꼭 찾아야 했다. 엄마의 소중한 마음이자 사생활이기에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는 더 중요한 것을 지키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결국 일기장을 꺼내기로 결심했다.
옷장 깊은 곳에서 일기장을 찾아내자마자 나는 곧바로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한 대로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아빠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모든 글에는 사랑의 말들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깊이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일기장 같았다. 나는 그 일기장을 내 방으로 가져와 침대 아래에 숨겨두었다. 내 심장은 마치 터질 듯 두근거렸다. 엄마가 당장 일기장을 찾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엄마는 일기장을 찾지 않았다. 나는 그 일기장을 며칠 동안 꼼꼼하게 훔쳐봤다. 아빠에 대한 '부정'의 마음이 단 하나라도 없어야 했기 때문에. 온통 사랑으로만 가득 찬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사이가 극에 달하던 때,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빠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엄마의 일기장을 건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마음'을 건넸다. 당신에게 이토록 진심이었던 엄마의 마음을.
일기장을 아빠에게 건넬 때,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아빠가 일기장을 읽으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설레기만 할 줄 알았지만, 기대보다는 불안이 가득했다. 내가 기대한 것처럼 아빠가 이 일기장을 읽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오래된 일기장 한 권으로 끝나버릴까? 그런 불안감 속에서 나는 엄마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불안의 마음에서 또 다른 씨앗을 발견했다.
엄마의 일기장에서 내 이름 세 글자와 함께 적혀 있던 글이 떠올랐다.
'귀엽고 작은 아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
아빠의 손에 쥐어진 그 일기장 속에는 나를 향한 사랑도 가득 담겨 있었다. 나를 향한 사랑이 아빠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사랑은 흔하지 않아서 더욱 소중하고 불안했다. 나는 다시 그 일기장을 읽을 수 있을까? 엄마의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그 페이지를 찾아서 찢어 간직하고 싶었다. 가장 소중한 곳에 고이 보관하고 싶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사이를 이어주고자 했던 일기장은, 엄마와 나의 사이를 잇는 일기장이 되었다.
엄마가 꾹 눌러 적은 내 이름 세 글자를 떠올리며 이불을 덮고 엉엉 울었다. 내 이름은 그토록 사랑스러운 글자였다.
처음 마주했던,
사랑스럽고 예뻤던,
네 살의 아이에게 사랑의 마음을 품었던 엄마를 떠올린다.
아빠가 그 일기장을 읽고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기장을 찾은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내가 잔뜩 느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