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나를 꺼내는 시간

에세이_42

by 최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늘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려고 애썼다. 눈치를 살피며 상대가 만족할 만한 것을 찾았고,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정작 내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슬럼프가 찾아왔다. 일상은 지루하고 무료해졌고, 점점 지쳐갔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자극을 찾아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발길이 이끄는 대로 도서관을 찾게 되었고,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글이 주는 감동에 마음이 움직였고, 활자는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독서에 푹 빠지게 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 달에 30권씩 읽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그보다 줄었지만, 처음엔 그저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독서에 빠지게 된 거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다독왕으로 표창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날씨가 참 푸르다.

나무는 초록 옷을 입고, 하늘은 쾌청하게 펼쳐져 있다. 초록과 파랑이 어우러진 이 계절의 조화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울린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실 나는 미술을 전공했다.

미술을 참 사랑했지만, 직업으로 삼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음 주말, 오랜만에 도구를 챙겨 그림을 그리러 나가기로 했다. 그 계획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지겹고 무료했던 일상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독서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 된다.


이제는 내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집중해 보려 한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7월에는 좋아하는 책과 붓을 곁에 두고 보내려 한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참 행복해졌다.


올해 남은 하반기도 어떤 즐거움으로 채워질지 벌써 기대가 된다.

어쩌면 또 터무니없는 것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것을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니까,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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