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의 정치적 욕망

종교와 정치의 대환장 콜라보

by 최희규


사무엘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세습했다. 하지만 이 아들놈들이 뇌물이나 받고 재판을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백성들의 원망이 자자했다. 결국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엘리 제사장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고 자식들 때문에 일을 자꾸 그르친다. 이번 기회에 아예 '사사'제도를 폐지하고 왕정 제도를 도입하자고 이야기 한다.


마치 대통령이 문제가 많으니까 의원내각제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검은 속내를 숨긴 몇몇 의원들과 닮은 꼴이다.


사실 사사제도는 재미가 없다. 맨날 공의와 정의 고아와 과부, 올바른 재판 따위에만 신경쓰다가, 가끔 외부에 적이 쳐들어오면 사사를 통해서 전쟁에 이기는 방어에 치중한 정치체계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빵필승의 전략. 그리고 전리품 획득. 고대사회에서 이것만한 경제활동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을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전리품을 획득해야한다. 즉, 왕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생각한 나라 자체의 근간을 뒤집는 결정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단순하다. 복지가 잘되고, 올바른 재판이 이뤄져서 억울한 사람이 없고, 십계명이 지켜지는 곳. 이 체계가 다른 외부세력에 의해 무너지지 않도록 사사를 통해 하나님이 직접 방어하는 나라. 그래서 성경에서 항상 강조되는게 '올바른 재판' 이었다.


하지만 뭐시 중한지를 모르는 백성들은 사사들이 재판을 잘 못했다는 핑계를 들먹이면서 아에 왕정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왕정제도는 재판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는 결정이다. 그들이 정말 올바른 재판을 원했다면 다른 정직한 사사를 원했어야 했다. 그들은 그저 강한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쳐서 전리품을 획득하는 것이 부러웠을 따름이다. 주변에서 그짓을 가장 잘하는 국가가 블레셋이었다.


그래서 블레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우고 철기 기술을 배우면 정말 위험한 나라가 될 것이라도 우려할 정도였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삼상13: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왕은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무엘의 아들들이 계속 사사를 하도록 놔둘수도 없었다. 여기저기 싸지른 똥을 치우기 위해서 고민하던 하나님은 결국 '지도자'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 인물이 바로 '사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정제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바로 옆에 있는 블레셋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지도자 사울을 통해서 블레셋을 없애버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사무엘에게 말한다.


삼상9: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사무엘은 약간 삐졌다. 자기 아들들이 계속 사사로 남길 바랬는데, 듣보잡 사울이라는 놈에게 '지도자'라는 직책을 맡기겠다는 하나님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그리고 등장하자 마자 블레셋을 무찌르는 업적을 허락하시다니....이러면 자기의 아들들은 진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하지만 사무엘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순 없다. 시켜서 하긴 하지만 일을 대충 처리한다. 마치 요나가 니느웨가 싫어서 말씀을 대충 전하는 것 처럼... 그렇게.


그 증거가 삼상10:1절의 내용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해석은 학자에 따라 다르다. 나는 그 중에 사무엘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울에게 비협조적이었다는 내용을 따른다.)


삼상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사무엘상10장1절의 내용을 읽어보면 너무 단순하다. "지도자가 되었으니 니 할일을 해라. 끝." 이런 식이다. 구체적으로 사울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와주지 않는다.


삼상9: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울을 통해 블레셋을 무찌를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무엘은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구절이 너무 단순해서,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70인역 번역자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이 직접 삼상9:16절의 내용을 추가해서 사무엘이 말했을 것이라고 덧붙여서 번역을 해 놓는다.


삼상10:1 사무엘은 기름 한 병을 꺼내어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추며 이렇게 선언하였다. "야훼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백성이스라엘의 수령으로 성별해 세우시는 것이오. 그대는 야훼의 백성을 지배하시오. 그대는 사방에 있는 적의 세력으로부터 이 백성을 구해 내어야 하오. 야훼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 몫인 이 백성의 수령으로 성별해 세우신 표는 이것이오.


학자들은 히브리 사본이 원래의 내용이었을 것이라 이야기 한다. 즉, 70인역 번역자가 당황할 만큼 성의 없는 기름 붓기와 불성실한 인수인계의 순간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무엘은 사울이 '지도자'가 되어 자신의 아들들이 '사사'에서 쫓겨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방해공작이 어느정도 먹혔던 것일까? 사울은 여호와의 영이 임했지만, 불성실한 인수인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겁쟁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그는 그렇게 블레셋을 무찌를 수 있었던 하나님의 때를 놓치게 된다.


삼상10: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사울은 침묵함으로 '지도자'가 되는 것도 놓쳤고, '블레셋'도 무찌르지 못하게 된다.


사무엘은 만족했을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계속 왕을 원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사무엘은 이 왕을 뽑는 행위를 위해 제비뽑기를 마련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제비뽑기는 '죄인'을 뽑을 때 주로 하던 행위였다. 사무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왕이라는 직책을 별볼일 없고 쪽팔린 것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렇게 제비를 뽑고, 죄인을 뽑듯, 사울을 당첨시켰다. 예상했던대로 위엄은 커녕,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있는 겁쟁이 사울의 모습이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에 있던 불량배 역시 사울의 위엄을 떨어트리는 데 한몫했다. (사무엘이 미리 매수를 해둔건지, 아닌지는 주님만 아시리...)


삼상10:27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그렇게 왕이 되었지만, 명목상 왕이었을 뿐이다. 여전히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사직을 수행하면서 권리를 행사하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왕이라는 허울뿐인 직을 만들어서 사울을 앉혀뒀으니 사무엘의 계획이 어느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그냥 평소에 하던대로 밭갈고, 소 여물 주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삼상11: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그러던 어느날, 암몬이 쳐들어왔다. 하나님께서 하시던 대로 사무엘을 통해서 전쟁하고 승리하도록 인도하시면 된다. 삼상7장의 에벤에셀의 하나님. 사무엘을 통해 전쟁에 승리하셨던 하나님 아닌가?


어라? 이번에는 뜬금없이 소 여물이나 먹이던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게 아닌가? 사무엘도 있고, 사무엘의 아들들도 있고, 사사가 있는데 왜 허울 뿐인 왕 '사울' 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단 말인가?


삼상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전에 사무엘이 '지도자'로 기름 부을 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지만, 블레셋을 무찌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사울은 그동안 사무엘이 자기에게 은근히 엿을 먹인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사울은 그동안의 쌓인 분노를 암몬에게 터트려버린다. 분노게이지 100%. 필살기 사용 시간이다. 위 아래 위위 아래 + A버튼


암몬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사울은 이 전쟁을 기점으로 진정한 '왕'이 되어버린다. 이미 왕이 되었는데 무슨소리냐고? 제비뽑기로 진행된 사무엘의 농간에서 벗어난 진짜 왕의 대관식을 따로 진행한다.


삼상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15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대관식에서 사무엘의 이름이 빠져있다.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분명 사무엘이 있어야 하지만, 기뻐하는 자들의 명단에서는 사무엘이 빠져있다. (사무엘 삐짐주의)


그리고 사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 백성들 중에 한명이 그때 제비뽑기 할 때 사울을 모욕한 그 불량배를 찾아내서 혼내주자고 이야기 한다. 아앗. 특검이다. 이거 조사하면 불량배를 매수한 사무엘이 걸릴 수 도 있는 위기다. 하지만 사울은 대선에서 승리한 자의 여유를 보여준다.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삼상11: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1:13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이렇게 사울은 '왕'이 된다.


원래 하나님의 의도는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사제도와 왕정제도 그 사이에 무언가를 만드시려고 했는데, 사무엘이 망쳐버렸다. 허울 뿐인 왕을 세워놓으면 자신의 아들들이 사사직을 계속 할 줄 알았던 정치적 꼼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사울과 사무엘은 점점 앙숙이 되어 버린다.


이 해석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내가 동의하는 주석이 절대적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이런 해석도 있으며, 성경의 인물들도 우리들 처럼 입체적이고 정치적 이익관계에 따라 얽히고 섥힌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것 처럼, 자기는 하나님 말씀만 선언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구이며, 진짜 그렇게 믿는 사람은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울과 사무엘 이야기를 길게 써봤다.


내 안에 이익관계를 생각하고, 정치적 입장을 갖고 설교에 반영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적어도 설교자라면 마이크를 쥐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 역시 그런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혹시 사무엘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진 않은지 매일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는 매일 기도해야 하며, 항상 정직한 영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괜한말이 아니다. 매일 매일 정직한 영을 받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나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야기 하는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계엄 시도가 얼마나 사악하고 말도 안된다는 것을 적어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악한 것을 악하다고 이야기 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한 태도를 넘어, 그 짓을 옹호하는 설교를 내뱉은 결과를 보라.


오늘날의 개신교는 전광훈, 신천지, 천공, 안산보살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개긴도긴이라는 소리다.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다. 진짜 목사라는 직업이 이리 부끄러운 날이 있었던가?


나는 이 땅이 천국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갈등할 것이고, 서로의 의견차이로 얼굴도 붉힐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서로 합의한 가장 현실적인 제도가 민주주의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불편하다고 상대방을 죽이려는 시도. 고문과 학살을 통해 나의 의견을 주장하려는 태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번다신 이런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내란죄는 무기징역과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 수위를 정해둔것 아닌가?


대체 정치적 입장이 어떠하길래, 그놈의 이익이 무엇이길래, 이 말도 안되는 일을 설교시간을 빌려 두둔한단 말인가. 그냥 개인 유튜브를 틀어놓고 이야기 한 것이라면 참고 넘어갈법도 하지만. (사실 그것도 짜증나긴 매한가지다.)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고 하기엔 한국교회는 일부분이 전체가 되어버렸다. 두둔하거나 옹호할 생각도 없다. 그러려고 쓴 글이 아니다. 그냥 나중에 이 글은 성지가 될 것이라 써두는 것 뿐이다.


전광훈과 신천지가 지금 나의 이익과 일부 일치한다는 이유로 모른 척 눈을 감거나, 혹은 동조하거나, 적극 가담한 행위가 나중에 한국교회를 어떻게 집어삼키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곧 성지가 됩니다. 흑역사로 남지 않으려면 각자 기록을 남겨라.


"난 계엄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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