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육체의 가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by 최희규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3번 조른다. (고후12:8) 하나님은 안된다고 하셨다. 하나님 나빠요.



바울은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아서 3번이나 졸랐던 것일까? 아니다. 고후11장을 보면 바울은 자기 몸을 어벤져스 급으로 사용한다. 곤장을 맞고, 매를 맞고, 파선을 당해서 죽을 뻔하고, 강도를 만나고, 쫓겨다니고, 이단으로 오해 받아 몰매 맞고, 괜히 간섭하다가 감옥에 갇히기 까지 한다. 자신의 몸에 일도 관심이 없다. 이런 바울이 왜 자신의 몸을 위해 기도했을까?



또한 바울은 자신의 형제를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롬9:3)는 신앙의 소유자 아닌가? 바울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즉, 그의 육체의 가시는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몸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3번이나 기도할 만큼 집요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육체의 가시로 인해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까지 의심받는 현실이 바울을 화나게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보면서 그의 복음을 의심했다. 다른 사도들을 봐라. 예루살렘에 베드로와 야고보는 대형교회 목사로써 이름을 떨치는 중이다. 베드로의 설교 한번에 3천명씩 회개하고 (행2:41) 교회에 등록한다. 성도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유명해 져서 그런지 이쁜 마누라도 얻었다. 그런데 바울은 돈도 없고 몸도 약하고 자비량 선교나 하고 있어서 여자가 꼬이지 않는다. (고전9:5)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성도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이상형'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보니, '이상한 형'이 와있었다. 몸도 약하고 말도 못하고 (고후10:10) 영 시원찮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른 사도들처럼 성공해야 하지 않나?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맨날 맞고 다니고, 맨날 도망 다니고, 이단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감옥에 갇혔다는 (전과자라는) 흉흉한 말도 들린다.



그래서 바울은 진짜 열심히 했는데, 죄다 이런 식의 반응을 경험할 때 마다 지쳤을 것이다. 그때 마다 한번씩 기도한다. 육체의 가시 좀 없애주세요. 건강하고 좋은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믿을 겁니다. 라고 합리적으로 협상을 시도했다. 그런데 거절 당했다.



다시 맘 잡고 열심히 했다. 현실은 여전히 능력없는 상가2층의 개척교회 목사 꼴이다. 이번에는 감정헤 호소해 본다. 울면서 고함을 지르며 불쌍한 자신의 신세를 낱낱이 고백한다. 거절 당했다.



마지막으로는 이거 안해주면 더이상 못하겠다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배째라고 말하며 드러누웠다. 그런데 하나님은 친히 바울의 배을 째며 말씀하신다. 니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후12:9)



우리 주위에서 잘 찾아보면 그런 목사들이 있다. 설교를 들어보면 맞는 말 같은데.... 하는 짓을 보면 참 헌신적이고 착한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저모양 저꼴이지?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목사들.



성경 말씀대로 잘 사는것 같은데... 개척교회 하면서 성도는 없고, 돈도 없고, 투잡이랍시고 노가다를 하거나 배달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목사들. 겉으로는 위로하고 격려하지만 못내 돌아서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며 영 볼품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잠깐 더 심한 생각을 해본다. '기도를 안하나?' 하나님이 왠지 함께 하는 것 같지 않다. '무언가 잘못했나?', '겉으로는 그럴 듯 해도 뒤로는 죄를 많이 지었나?', '저주를 받아서 저렇게 일이 안풀리는 건가?'



아닐거야. 얼른 미안한 맘으로 고개를 흔들며 애써 그 생각들을 털어버린다. 하지만 이미 그 털어버렸다고 생각한 마음들은 이미 마음 한 곳에 퇴적층이 되어 조금씩 쌓이고 있다.



바울은 이 신앙의 탈을 쓴 승리주의, 성공주의와 평생을 싸웠다. 그는 이것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이야기 하며 화를 냈다. (빌3:18)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일이 잘 풀려야지" 라는 굳건한 퇴적층은 바울이 무너트릴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이 산을 들어 저리로 옮길 수 있다. 라고 말해놓고 정작 옮긴 적은 없었다.



그뿐인가? 맹인된 사람이 어떤 죄 때문에 저렇게 되었습니까? 라는 승리주의적인 질문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라고 모호한 말만 남기고 언능 3년 뒤에 올라가 버렸다. 하....할많하않.



수 많은 사역자들이 저마다의 육체의 가시를 품고 사역중이다. 몇몇 한국을 대표한다는 '재수 좋은' 목사들이 성공과 승리를 이야기 하면 할 수록 그 가시들은 더욱 우리들을 파고 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버즈의 가시를 애창했던 것인가? "~ 내 안을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 제발 가라고 아주 가라고~ 애써도 나를 괴롭히는데~"



결론적으로 바울은 패배했다. 그가 세운 교회는 바울을 의심했고, 서로 싸웠다. 물론 아주 가끔 바울을 응원하는 소수의 성도들에게 위로도 받았다. 교회는 많이 개척했지만, 성공한(?) 교회는 없었다. 계속 문제 투성이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편지를 썻다. 의심하지 마세요. 싸우지 마세요. 날 믿어줘서 고마워요. 감사해요. 등....



물론 대형교회를 운영하는 베드로나 야고보는 편지 따위 쓸 이유는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부목사가 다 알아서 해결했을 것이다.



그렇게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패배한 사역자의 최후 답게 순교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편지들은 오늘 우리들에게는 신약성서가 되었다.



만약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변명하기 위해 보낸 그 수 많은 편지가 없었다면 구약성경 뿐이 없었을 정도로 그의 편지는 신약성경 대부분을 형성 한 '경전'이 되었다.



아아... 하나님 당신은 대체.... 몇 수 앞을???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한다.



"니 은혜가 네게 족하다."



아...하나님 정말 족같네..아니 족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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