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부재와 은총의 역설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 에서 신이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 하는데, 내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위안 없는 불행을 만나라는 대목이었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 기댈 곳도, 위안을 받을 수도, 언젠간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가장 효과적으로 빈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베유 누나 싸패인줄....)
그렇게 위로도 소용없는 절망이 만들어 낸 '빈자리'에 '은총'이 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빈자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스스로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저 사람에게 복수하면 속이 시원할 거야' 같은 상상력으로 인해서 노예, 죄수, 매춘부같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곳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고 말한다.
즉, 상상력으로 계속 빈자리를 메운다면 우리는 아무리 고통을 겪어도 정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노력이 성공하여 상상력이 정지된 상태를 복음서의 표현을 빌려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말한다. 영혼에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그야말로 '텅 빈' 상태를 말한다.
영혼이 이 텅 빈 상태가 될 때, 우리는 어떤 역경이 닥치든 우주 전체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나의 상상이 아니라, '우주의 실재'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빈자리를 통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진정한 은총이 비로소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지금부터다.
이렇게 어찌저찌 해서 '빈자리'에 '은총'이 임했다고 치자.
그 절망과 고통 속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은총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평안함, 기쁨, 믿음, 위로 등 충만한 선물이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시몬 베유는 이 기대 역시 신에게 보상 받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은총'이 임한 것은 신의 '부재'의 형태로 임한다고 말한다. 즉, 영적인 보상에 대한 집착까지도 포기한 상태가 신의 부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부재는 '은총'이 임했을 때에 내가 바랬던 '충만함' 조차 내 욕망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 조차 주지 않겠다는 신의 선언이다.
이 부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신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신이 채워준 것이라고 믿었던 그 감각을 취한다면, 우리는 신이 아니라, 그 '충만함'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 순수한 사랑을 위해 신은 그의 '위로'를 숨기실 것이다.
이 역설이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십자가'이며 예수의 외침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의 '빈자리'에서 느끼는 신의 부재는 실패가 아니라. 가장 순도 높은 신의 은총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전도서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12:12)
그냥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신앙생활 할 때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