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와 미가는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전혀 다른 사역을 했다.
이사야는 귀족 출신의 왕궁 예언자로 수도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역했었고, 미가는 시골(모레셋)의 평민 출신 (아마 가난했을것 이라고 추정) 예언자였다.
이사야는 왕을 직접 대면하면서 정치적, 외교적인 조언들을 주로 한다. 그의 메시지는 적들이 쳐들어와도 하나님을 신뢰하면 "예루살렘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였다.
사31: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반면에 미가의 사역 대상인 백성들은 항상 굶주렸고, 가난했다. 그리고 이 원인은 예루살렘의 귀족들의 착취였다. 그래서 미가는 이렇게 예언한다. "예루살렘은 절대 망할것이다."
미3: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하시더라
이처럼 예언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점괘'가 아니다. 예언에서 '예'자는 한자어로 豫(미리 예)가 아닌, 預(맡길 예)를 사용한다. 하나님이 예언자에게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맡기신 말씀을 뱉어내는 것이 바로 '예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예언의 말씀도 순도 100%의 하나님 말씀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이사야는 당연히 당시 왕궁의 예언자로써 예루살렘의 혜택을 보고 있었던 사람이다. 때문에, 예루살렘의 멸망같은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사야의 메시지는 강대국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회복을 원했다.
반면에 미가는 자신의 교인들 (백성들)이 매번 죽어라 일해도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노예로 팔리고, 노역에 다치거나 죽는 모습들을 계속 경험하면서 분노게이지가 만땅이었다.
앗수르의 침략에도,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사는건 매한가지라는 생각에 어쩌면 미가는 이런 ㅈ같은 세상 그냥 불바다가 되는게 더 낫다면서 예루살렘의 파괴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에 있던 두 명이었지만, 서로 공통점도 있었다.
사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미4: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삶의 환경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르게 예언할 수 도 있지만, 거시적 관점에 있어서 결국 평화와 사랑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함께 걸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내 결론은 결국 그 길을 걸어가는 여정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나도 왕궁예언자가 되고 싶다.
이제보니 이사야가 자신의 소명을 밝힐 때 왜 그렇게 본인이 하겠다고 약간 나댔는지 이해가 간다.
사6:8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왕궁 예언자가 꿀빤다는 걸 알았던 이사야는 아마도 꿀벌이었나 보다.
예언서에서 가장 불쌍한(?) 예언자로 기록된 예레미야의 소명을 읽으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렘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오죽하면 말하면서 '난 말 못해요' 라고 변명을 했을까. 그의 다급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