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소회
과정은 결과물에서 돈이나 명예가 남지 않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드디어 책이 나왔다. 나는 몰래몰래 혼자서 쿵짝쿵짝 했다가 불현듯 팡 터뜨려서 파급효과를 극대화 하는 걸 좋아해서 책 내는 건 몇명한테만 말했었다. 출간 몇 달 전부터 동네방네 소문 내고 다니면 다들 몇 달 간 시달리다가 정작 출간 당일에는 축하할 힘이 빠져 내가 원하는 양만큼 충분히 축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간할 때가 다 되어서야 "나 다음주에 책 나와! 우와! 짜잔!!" 하니 역시 내 예상대로 다들 크게 당황스러워 했다. '갑자기?' '왜?' '너 글 써?'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이런 반응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다.
책을 출간한 것 자체도 기쁘지만 투닥투닥하며 책을 만든 과정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이런 과정 없이 누군가 짠 하고 책으로 만들어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그럴 순 없으니까. 어떻게든 좋고 훈훈한 경험이었다고 인지부조화를 극복해 보는 것이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전에 없이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열정과 결과물에 대한 애착을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 일을 할 땐 그저 남의 집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처럼 '여기는 안 보이니까.. 안 닦아도 되겠지...' '서랍에 쑤셔 박아 놓으면 겉에서 보면 깨끗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대강 보면 멀쩡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치중했다. 대행 일이란 아무래도 그런 맹점이 있는 것이다. '어차피 남의 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하지만 이 책은 분명한 나의 일이었고 -실명은 아니지만-'빵떡씨 지음'이 단단하게 새겨져 나갈 것이었다. 그래서 '편집자가 알아서 잘...'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가도 '그 부분이 꽤 구렸던 것 같은데 아무도 안 고쳐 주겠지?!!'하며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그 탓에 나는 책 마무리 작업 단계에서 편집자에게 질퍽이처럼 질척거리며 '편집자님 이부분 조금만 수정...' '마지막으로 이거만 삭제해주시면 완벽..' '정말 죄송한데 진짜 마지막으로...' 같은 메일을 수시로 보냈다. 수정요청 한 번에 안 하고 찔끔찔끔하는 클라이언트를 그릏게 욕했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으니 편집자가 나를 무어라 욕하고 있을지 너무 잘 알겠더라.
출간을 하며 누군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할 수 있던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이제껏 회사에서 일에 대해 내 고집을 부리고, 그 고집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잘 없었다. 보통 남의 요구에 맞춰 결과물을 내고 그걸 남한테 검사받고 다시 남의 마음에 들게 고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책에 있어서는 내 마음에 안 드는데 출판사 마음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는 없었고, 내 마음에 드는 걸 출판사 마음대로 폐기할 수도 없었다. 내가 참여하는 일에 어느 정도 통제력을 갖는 건 어딘가 짜릿한 경험이었다.
물론 내가 짜릿해할 때 편집자는 분명 '악당보스 같은 새끼.. 지 꼴리는 대로 다 할라고...'하며 신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에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있고 나만 어둠이 아니면 되니까 편집자가 고생하는건 내 알 바가 아닌...
선량한 편집자는 되도록 내 요구를 들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양쪽 다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는데 바로 욕이었다. 내 글에는 유난히 욕이 많았다. 책은 빼도박도 못 하게 인쇄되어 나가니 출판사에선 욕을 싣는 것에 대단히 신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욕에 있어서만은 유난스럽게 작가의 프라우드를 내세우며 절대 못 뺀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출간일은 점점 다가오고, 언제까지 사이 나쁜 국회의원들처럼 일을 안 할 수는 없어서 극적으로 타결을 본 것이 '염병', '개새끼', '뒤진다'는 오케이. '씨발', '존나', '좆됐다'는 변경하는 것이었다. 어원에 성적인 뜻이 있는지가 기준이었다. 편집자는 교정을 하며 '씨발'을 '씨바른놈' 등으로 교묘하게 바꿔 욕의 맛을 살리면서도 심의에는 걸리지 않고 나의 원망도 덜 사는 길을 택하고자 했지만 나는 나의 씨발을 그따위 애매한 혼종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쓸 데 없이 투쟁적인 태도를 취해 언제 시작될지 모를 편집자의 탈모 진행 시기를 앞당겼다.
제목을 정할 때도 안나가 엘사 찾아 얼음왕국 가는 듯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나는 욕에 미쳐서 제목에도 '욕'을 넣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으로 업무일지 대신 욕무일지 어떠신가요...?' '고난기 말고 욕설기는요..?' 하며 질척거렸다. 제목뿐만 아니라 부제, 표지에 들어가는 카피까지 '서당개는 풍월을 읊고, 직장인은 욕설을 읊는다' 같은 식으로 제안해서 편집자는 이제 아주 욕이라면 지긋지긋 하여 전에 없이 바른말 고운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몰래 회사 욕하는 일기를 썼던 것처럼 편집자는 '빵떡씨볼놈 일기 편집하다 혈압오른 일기'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하도 편집자가 제안하는 문구는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니 마지막엔 '저희를 한번 믿어봐주십쇼'하는 말까지 하여 나는 조금 미안스러워졌다. 하지만 미안스러운 건 미안스러운 거고 나는 아직도 내 맘대로 못 한 게 천추의 한이다.
원래부터 이렇게 결과물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회사에선 디자이너에게 제작 가이드를 넘기고 나면 디자인이 어떻게 나오든 알 바가 아니었다. 내 마음에 들어봤자 결정은 팀장님이 하기 때문에 내 선에선 크게 구리지만 않으면 되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작업한 게 크게 구린 경우는 별로 없었고 아무래도 크게 구린 디자인을 하면 애초에 디자이너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그저 크게 구리지 않은 결과물을 받아 상사에게 전달하곤 했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달라졌으니, 역시 사람에겐 각자 맞는 일이 있으며 이 일을 못한다고 저 일도 못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저 내가 홍보대행 일이 오지게 안 맞는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를 안 다니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책이 막 나온 어젯밤엔 극단적인 두 가지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하나는 책이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 SNS에서 빠르게 확산돼 포스트 이슬아라 할만한 인기를 누리고.. 세바시에 출연해 '여러분도 열정을 가지면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방귀를 입으로 뀌고... 셀럽이 되어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예능인 런닝맨에 출연해 생에 할 효를 다 하고.. 뭐 그런 상상이었고, 하나는 책 어딘가에 말 실수를 해서 '작가 빵떡씨 인성논란'으로 출판계와 홍보계와 이세계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상상이었다.
물론 현실은 둘 다 아니고 내 책은 출판시장에 쏟아지는 삼만팔천육백권의 다른 책들에 뒤덮여 나온지 안 나온 지도 모르게 조용히 잊혀져 천 권의 재고는 우리집 안 쓰는 김치 냉장고 안에 썩지 않게 보관되고... 곡의 운명은 제목을 따라 간다는 말처럼 책의 운명 역시 제목을 따라가 극비일기는 리얼 아무도 모르는 극비에 붙여지고 말테다...
이런 이유로 나의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더욱 소중해 진다. 과정은 결과물에서 돈이나 명예가 남지 않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책이 망하더라도 그것은 과정의 중요성을 높이기 위한 나의 의도된 망함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아무튼 겁쟁이라 실패했을 때 상처 받지 않는 법만 무궁무진하게 연구 중이다.
(책 예약 구매 링크... 예약 구매하면.. 싼 것으로 앎....)
http://aladin.kr/p/GL13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