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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Sep 01. 2019

[글로그 26] 부산행 (중)

예쁜 야경을 보려면 오줌을 좀 참았다가 봐라

음악감상과 요가와 안마와 아무튼 꿈지럭거릴 만한 건 다 꿈지럭거리고 집을 나섰다. 일단 집을 나서면 주로 마리가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마리는 젊어서 고생은 전세금을 빼서라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새로운 것, 활동적인 것, 수고로운 것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 날 마리가 선택한 고생은 30도의 날씨에 국제시장 돌아다니기였다. 국제시장은 여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을 정도로 넓고, 복잡하기가 삼성역 코엑스 저리가라 하는 곳이다. 마리는 그 소비재의 미로 속에서 구제 옷을 파는 골목을 찾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냥 골목이 아니라 '저번에 갔던 거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2020 하계올림픽 시장 둘러보기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국제시장 골목골목을 다녔다. '저번에 갔던 거기'는 마치 꿈에서 본 장소 같아서 어떤 표지판도 없고 그저 흐릿한 느낌만 있었다. 나와 형이는 토끼를 쫓는 앨리스처럼 마리의 뒤를 쫓았고 앨리스가 토끼 때문에 얼마나 뺑이를 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마 중간중간 들린 가게들은 하나 같이 더웠다. 마! 이게 부산의 자연풍이다! 하듯이 에어컨을 트는 대신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이런 건 레트로 감성이라기 보다 아프리카 감성이 아닌가 생각하며 의미없이 옷을 뒤적거렸다. 그 와중에도 마리는 땀 범벅인 목에 꿋꿋이 스카프를 둘러 보며 이건 어떤가 저건 어떤가 골랐다. 진취적인 아이는 쇼핑조차 저렇게 의지 넘치게 하는구나 싶었다. 형이는 더위에 뇌가 녹은 건지 입이 녹은 건지 혹은 둘 다인 건지 아무 소리도 없었다. 가끔 내부에 반드시 냉방이 되고 있을 것 같은 가게가 보일 때만 필사적으로 들어가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마리는 구제 옷 가게가 아니면 발도 들이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형이는 눈 앞에 빵빵한 에어컨을 두고 돌아서야만 했다. 그때 그녀의 눈빛은 이마트에서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두고 돌아서는 아이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아니 꼭 마리가 가자는 대로 가야하냐, 너희의 의견을 주장해라' 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둘 이상만 모여도, 그들이 친구라 해도 반드시 위계가 생긴다. 위계는 사람의 지위나 성격, 상황 같은 것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우리 사이의 위계를 결정하는 건 기운(아우라)으로 추측된다. 마리가 호랑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나와 형이는 개구리밥 정도다. 고로 먹이사슬 제일 아래에 있는 나와 형이가 육식동물인 마리의 말을 본능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내 분석으론 그렇다.


그마이 수고를 했음에도 저번에 간 거기는 찾지 못했다. 우리가 산 것은 실내용 슬리퍼, 피규어 몇 개, 해바라기 조화로 만든 리스 정도였다. 오늘 남은 전리품과 추억 중 무엇이 더 별 볼 일 없는지 골똘히 생각하던 차에 마리네 부모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전 날에도 뵙긴 했지만 그땐 자정이 넘은 시간이어서 이제서야 제대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의 첫인상을 떠올려보자면 어머님은 카리스마 있는 주부 에어로빅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고 아버님은 인상 좋은 동네 인테리어 가게 사장님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두 분 다 전혀 다른 일을 하신다.


나는 두 분을 보자마자 형이 뒤로 비죽비죽 숨었다. 마치 엄마 친구가 집에 놀러왔을 때 4세 아이가 낯을 가리듯 몸을 반쯤만 내놓고 "안녕하세요..." 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특히 어른을 어려워한다. 친구들이랑은 까불고 찧고 법석을 하다가도 연세가 있는 어른이 등장하면 '어.. 어른이다!' 하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친다. 이게 스물여섯에 할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나도 이런 나를 어쩔 수 없다. 반면에 형이는 이 분야(?)에 아주 특화되어 있다. 어른들을 뵙자마자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신지 요새 덥진 않으신지 갑자기 찾아와 폐를 끼친건 아닌지 스타일이 어떻게 그렇게 멋지신지 인상은 왜 이렇게 좋으신지 피곤하진 않으신지... 개발자가 입력한 내용을 출력해내는 AI처럼 안부와 감탄과 감사를 쏟아냈다.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해서 "...ㅁ님, 아ㅂ님.."이라고 부르는 나로선 우러러 보게 되는 재능이다.


친구의 가족을 만나는 건 묘한 경험이다. 서로 닮은 사람들을 한 번에 보는 시각적인 체험도 묘하고, 친구의 성격과 취향 등에 가장 기본적인 배경이 되어준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묘하다. 몽골의 어느 유목민족이 사는 게르에 쭈뼛쭈뼛 들어가 촌장을 대면하는 느낌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머님, 아버님은 부산 야경을 보여주시겠다며 우리를 무슨 산(이름은 잊었다)에 데려가셨다. 정상에 오르면 봉수대가 있고, 동서남북으로 부산의 야경을, 특히 광안대교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마리는 더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고싶어 했다. 아버님은 마리를 번쩍 안아서 돌담에 올려주셨다. 마리가 더 넓고 아름다운 야경을 충분히 볼 동안 기다리셨다가 다시 마리를 안아 내려주셨다. 나는 좀 놀랐다. 위험하니까 올라가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위험하지만 한 번 해보라고 지지해주고, 오르길 도와주고, 내려오길 기다려주는 크고 작은 경험들은 마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라고 글을 마치면 좋겠지만, 사실 이 산행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다. 야경을 보러 가기 전에 어머님, 아버님이 저녁으로 낙지를 사주셨다. 나는 신나게 탕탕이도 먹고 좋다고 맥주도 마셨다. 다 먹고 나서 차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한 삼십 분쯤 가는데 오줌이 마려오기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면 쉬가 마려운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는 화장실을 가게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어른을 너무 어려워하기 때문에 마리와 형이에게만 은근히 싸인을 보냈다. 하지만 답으로 돌아온 것은 "쉬~~~ 쉬이~~"하는 능욕섞인 장난이었고 나는 오로지 개인의 고통으로 쉬마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십 분쯤 더 갔을까. 투포환 선수들이 요도에 버팔로를 던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내가 말이 없어지고 손톱을 물어뜯자 마리와 형이도 점점 심각성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마침 산에 도착했고 나는 기쁨의 눈물인지 오줌이 밀려 눈으로 나오는 건지 모를 뭔가를 훔쳐냈다. 기특한 마리 녀석은 "엄마 얘 쉬마렵댄다 화장실부터 가자"했다. 어머님은 안내요원에게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보셨다.

"저 위 전망대에 있습니다. 차는 여서부터 진입금집니다. 걸어서 20분쯤 가셔야 합니다"

아... 안 돼..! 나는 앞으로 쉬를 제 때 쌀 수만 있다면 직장도 불만없이 열심히 다니고 부모님께 효도도하고 낭비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살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어머님 아버님은 주차를 하시고, 우리 셋은 전망대로 달려갔다. 뭔가 짱구는 못말려 에피소드 같은 상황이 웃기고 빡쳤지만 아무튼 열심히 걸었다. 그 와중에 마리와 형이는 킬킬거리며 내 뒷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다. 나중에 봤는데,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조급하고 희망찬 엉덩이 두 짝이 씰룩거리는 부끄럽고 웃기고 또 부끄러운 영상이었다.


거의 전망대에 다 와 갈 쯤이었다.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다.

"야들아 주차장에 화장실 있다이가"

삶은 왜 항상 이런 식일까. 내려가서 아까 그 안요원 신발에 지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복수 욕구보다 배변 욕구가 훨씬 컸기 때문에 가까운 전망대 화장실에 지리기로 했다. 우리는 곧 전망대에 도착했고 화장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감탄과 기쁨, 회한과 안도의 몇 분이 지나고, 나는 가벼운 몸이 될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마주한 부산의 야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예쁜 야경을 보려면 오줌을 좀 참았다가 보라는 꿀팁을 끝으로 (하)편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부산로그 8.31

오른쪽은 형이. 왼쪽은 가벼운 방광의 나. 달도 기막히게 예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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