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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Apr 03. 2020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수현 님에게.



우선, 저는 이 일에 큰 낭패감을 느낍니다. '돌아와, 내가 잘 할게'라는 팻말을 들고 서있는다고 수현 님을 잡아둘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남고 떠나는 것은 호소나 선처로 되는 류의 일이 아니니까요.



사실 수현 님과 제가 업무 파트너이긴 했지만, 사적으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밥도 딱 한 번 같이 먹었고, 서로 카카오톡을 보내지도 않았고, 서로의 비밀 3가지를 나누기는 커녕 전화번호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수현 님과 꽤 가깝게 지냈다고 느꼈습니다. 서로 많이 웃어주고, 옷이나 머리를 보고 칭찬해주고, 서로의 의견을 신뢰하고, 솔직히 이야기 하고, 동시에 사적인 영역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사이였습니다.



저는 수현 님과 지내며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이 무해하고도 건강한 관계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좋은 가족과 연인을 곁에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현 님 같은 사람이 제 주변에 있는 것 역시 제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현 님이 가는 것이 아쉽습니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저는 수현 님과 일하는 게 정말 좋았습니다. 수현 님이 하는 말들은 겉과 속이 같았습니다. 그 속에 어떤 꿍꿍이가 있을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수현 님은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이 되는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게 수현 님 능력의 100%는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수현 님이 10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건 수현 님이 15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래 5인 사람임에도 이 일이 적성에 맞아 8 정도의 능력을 내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수현 님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20을 발휘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얘기가 수현 님이 이제껏 애정 없이 일했다는 뜻으로 들리진 않길 바랍니다. 단지 수현 님이 정말 원하는 일이 따로 있을 것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수현 님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회사를 떠나시는 거겠죠.



수현 님, 저는 수현 님의 앞길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해드릴 수는 없지만, 이 말은 해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너무 거창하고 무겁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사실 지금 제 말투가 가장 거창하고 무겁긴 합니다만.



진로나 미래는 무겁기 쉬운 주제 같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미래에도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거고, 수현 님이 도움이 필요하면 그 사람들이 수현 님을 도울 겁니다. 무엇보다 수현 님은 친절하고 위트 있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떤 미래에도 수현 님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현 님. 부디 직업적 습관 때문에 이 글의 논리적 결함이나 수정 사항을 생각하면서 읽진 않으셨길 바랍니다. 그럼 이 원고를, 아니 편지를 드리는 제 마음이 퇴고를 하고 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요. 수현 님이 제게 좋은 파트너였던 것처럼 저도 수현 님의 좋은 파트너였다면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수현 님,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시든 수현 님 마음에 꼭 드는 모습이길 바랍니다.






현재 상황부터 설명하자면 수현 님(가명)은 아직 회사에 계시고 다음주에 나랑 점심도 같이 먹기로 했다. 그저



'빵떡 님, 저 회사 그만 둘지도 몰라요. 진로에 고민이 많거든요. 파트너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마도 수현 님은 회사를 나가게 될 것 같고, 이 '아마도'는 나를 좀 심란하게 했다. 그래서 주말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미리 편지를 써보게 되었다. 아직 멀쩡히 회사 다니는 사람을 이렇게 편지로 먼저 보내버리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참 이상하게도 나의 문학적 영감은 누가 퇴사를 할 때 가장 역동적으로 꿈틀댄다.



우리 대표님은 사람을 잘 안 뽑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신중하게 뽑고 있다. 대표가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는 좋은 팀원을 만들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이다. 나는 수현 님을 보면서 저 말이 거짓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여기가 복지는 쥐뿔도 없지만 수현 님 하나는 확실한 복지로구나'



그런 생각이었는데 있는 복지마저 잃을 마당이다. 하지만 아무리 회사 생활을 오래 해도 좋은 동료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데, 이런 삭막한 사회에서 나는 수현 님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으니 그것으로 여한이 없다. 또 나는 그녀에게 좋은 파트너란 어떤 것인지 배웠으니 내 다음 파트너에게 조금이라도 그 모습을 흉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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