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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Feb 03. 2022

2022년 1월 일기 모음

1/17

잠에 들고 싶지 않습니다. 잠을 자고 깨면 회사에 가야 하니까요. 이 얘기를 했더니 도현이가 '그건 좀 이상이 있는데'라고 했습니다. 저도 위험 신호인 것을 압니다.


바쁘게 일상을 살 때는 사는 것을 생각하느라 죽음을 무서워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간만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덜컥 무서워집니다. 그런 것처럼 한창 일을 할 땐 모르다가, 자려고 누우면 가슴에 섬칫한 느낌이 퍼집니다. 두려움의 감각인 것 같습니다.


눈을 뜨면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1/18

2021년에 가장 좋아한 가수: 짙은

별로 서글픈 기억도 없는데 들으면 뭔가 되게 가슴 아픈 첫사랑 있었던 것 같은 기분 드는 노래를 잘 만드는 가수입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겨 적습니다.


- DECEMBER

세월은 끊임없이 너를 밀어내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너를 데리고오네

한없이 맑은 물은 더 슬퍼보이고

들을 리 없는 노래들은 물가를 맴도네


- 해바라기

어느새 하늘은 섧은 어둠으로 빛나고

뛰어놀던 어린 친구들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

공원엔 바람이 갈대숲을 산책하는데

어디로 난 고갤 숙여야 몸을 피할 수 있는 걸까

알아 너의 정원엔 그 어떤 꽃들도 자랄 수 없다는 것도

이제 품어보지 못한 마음 그늘에 두고 떠나는 걸

하늘은 하늘로 그냥 머무르겠죠

구름은 어디로든 흘러가겠죠

난 어딜 봐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해지는 해바라기


- 백야

밤이 찾아와도 어둠이 내리지 않는

그 꿈 같은 곳으로 날 데려온 거야

빛나는 하늘과 떨리는 두 손과

나를 바라보는 너의 그 깊은 미소가

난 울지 않을래 피하지 않을래

어둠 속의 빛으로 넌 내게 머물러

날아가는 새들 길을 묻는 사람들

모든 것이 아직 잠들지 않았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빛나던 이 땅 모두가

꿈 같은 세계로 빛을 내고 있구나

오 그대는 오리 오 우리는 만나리 오 지지 않으리


1/19

아버지, 언젠가 일기에 스파이더맨 얘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힘을 원한 적 없는 사람에겐 너무 과분한 힘, 과도한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서 생각해보면 뭔가 빠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쓴다면 한 문장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큰 명분이 필요하다.'


큰 책임을 갖고 큰 힘을 쓸 만한 큰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의문스럽게 '왜?'라고 묻게 될 겁니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할까, 왜 노력해야 할까, 포기하면 안 되나, 다른 걸 하면 안 되나.


즐거운 일은 그냥 하면 됩니다. 쉬운 일도 그냥 하면 됩니다. 하지만 즐겁지도 쉽지도 않은 일은 그냥 할 수가 없습니다. 즐겁지도 쉽지도 않지만 해야 하는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한 문장이 내 안에 없으면 자꾸 가다 서고 뒤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1/20

"나중에 우리 엄마 아빠가 아프고 돈이 없는데, 내가 능력이 없어서 도울 수가 없으면 어쩌지?"

그 애는 침대에 곧게 누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그때도 내가 같이 있을 테니까 내가 널 도울게."라고 말했습니다. 그 애는 제 쪽으로 돌아 누우며 제게 참 따뜻한 이라고 했습니다.


그 애를 보지 못한지 오래 되었지만, 그때 제가 했던 말은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울 때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말을.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그런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괜찮은 날들일 수 없겠지만, 그런 날들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게 해주는 말. 마음을 비빌 만한 언덕이.


1/21

제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속에 담아 둘 자리가 넓지 않아 밖에 꺼내두는 거라고. 그렇게 꺼내 놓은 마음은 저와는 별개의 것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요즘 종종 생각나는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부모의 젊은 시절입니다. 지금보다 머리숱이 더 많고(그것도 새까만 머리숱이), 지금처럼 허리가 아프지 않고, 아직 알지 못하는 고단함이 더 많던 시절. 그런 시절은 저를 먹먹하게 합니다. 이렇게 먹먹해질 때면 일기를 씁니다. 그 먹먹함을 마음에 담고 있을 자신이 없어서요.


1/22

어릴 때부터 애인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혼자인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딱 한 번 '이래서 애인을 사귀는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요. 대학생 때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커플인 선배 언니, 오빠를 봤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요. 오빠는 별로 개의치 않고 이리저리 활개치며 언니를 웃겼고, 언니는 웃었습니다. 둘만 웃을 수 있는 그 세계가 좋아보였습니다.


영현이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손을 데우고 있으면 해동되는 돼지고기처럼 마음이 노곤해집니다. 냉동의 세계에서도 이렇게 하면 뭔가를 녹일 수 있구나, 생각합니다. 겨울에 애인이 있어 좋다고도 생각합니다.


1/23

죽을 땐 어떤 마음일까,를 오랜 시간 생각해왔습니다. '아마 이럴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 건 날 좋은 오후였습니다. 공기가 차고 가슴 벅차게 설레어서 '미래의 어느 날 오늘을 반드시 그리워하겠구나'라는 예감이 거의 아프게 들었습니다. 현재가 벌써 그리운 과거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짜르르하게 퍼지는 통증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죽는 순간에도 이렇겠구나.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그립겠구나. 생에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크고 벅찬 그리움을 느끼겠구나.


1/24

모든 별의 고향은 성운이라고 합니다. 성운은 별의 구름이라는 뜻입니다. 원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다가 서로가 서로를 당기는 힘에 의해 한 데 뭉쳐 별이 된다고 합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의 속성은 대개 구름 같은 것인가 봅니다. 뿌옇고 정체를 알 수 없고 분별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만이 속에 뭔가를 품을 수 있나봅니다.


1/25

줄곧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화가 나면 어떡하지', '내가 여기서 도움이 안 되면 어쩌지', '괜히 나를 신경쓰느라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어쩌지'. 나보다 나의 외부가 무사한 것에 신경 썼습니다. 그럼 나도 무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기분이 어떻든 우리 가족만 모르면 친구들만 모르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어디에도 제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옳은 것,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늘 상황과 사람에 따라 바뀝니다. 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저 사람의 행동에 대해 난 이렇게 생각해, 이 자리는 내게 이런 도움이 돼, 그때 난 이런 기분이었어...


1/26

요즘 내 일과: 실제 의사 결정 20% + '시발 뭐 어떻게 해야 되냐'라고 생각하기 80%


1/27

저는 사강을 사랑합니다. 그녀의 글도 좋지만, 그보다 그녀의 인생을 더 사랑합니다. 사강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저는 저를 파괴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이 말 대로 살진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 깊이 이 말을 좋아합니다. 누군가는 이 말을 자기파괴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제게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이용하고 즐기고자 하는 말로 들립니다.


'똑바로', '잘' 사는 건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기준에 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괴적인', '망친' 삶도 누군가의 기준에 의한 거겠죠. 누군가가 망쳤다고 생각하는 삶도 다른 누군가에겐 회복 가능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사강이 좋아했던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옮겨 적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곳에 그대로 계시옵소서

저희는 이 땅 위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이곳은 때로 이렇게 아름다우니...'


1/28

어릴 때 뭔가를 잘하는 방법 말고, 잘 못해도 즐겁게 하는 법, 실수해도 의연하게 다시 시도하는 법, 중심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 두는 법, 실패를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조금 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2/1

설입니다. 눈이 왔습니다. 엄마한테 "우리 나가서 놀다 올게"하고 효석이와 나갔습니다. 집 앞 놀이터에서 눈사람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심심해져 옥구공원에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밟고 간 자리를 밟으면 신발에 눈이 덜 묻겠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고 싶은 욕망은 참을 수 없는 것이어서 새끼발가락부터 축축해지는 것을 참으며 눈을 밟고 다녔습니다.


옥구공원에 있다가 "오이도까지 걸어가 볼래?" 해서 오이도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 갔습니다. "여기도 처음 이사왔을 때보다 많이 변했네" 같은 얘기를 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시쯤 나왔는데 저녁이 다 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쏘다닌 것이 몇 년만인가 싶었습니다. 중학생 때 그러던 것처럼, 편한 옷을 입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여기 갈까?" "저거 해볼래?"하며 쏘다니는 일은 언제까지나 즐거울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돈을 벌어도 순수한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변하지 않는가봅니다.


2/2

운동하기가 너무 싫습니다. 설에 많이 먹은 게 마음에 걸려 팔을 좌우로 흔들며 제자리 걸음을 했습니다. 효석이가 뭐하냐고 해서 운동한다고 했더니, 효석이가 할머니도 그것보단 역동적이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안 움직일 거면 젊음이 과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2/3

설 연휴라 본가에 좀 오래 있다 올라왔습니다. 본가에 다녀올 때면 항상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부모와 있어 좋지만, 필연히 떠나야 하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금방 울어버릴 듯한 기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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