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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식은 시트콤

by 빵떡씨

날짜: 2017년 8월 26일 ㅣ 날씨: 바람 순풍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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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팀장님이랑 대리님이랑 나랑 셋이다. 나는 들어온지 걔우 한 달 됐고 대리님이랑 팀장님은 2년 정도 같이 일했다. 팀장님이랑 대리님은 말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한 달 옆에 있으면서 둘이 나누는 많은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을 들을 수 있었다. 근데 그 중에서도 거의 들은 적 없고 앞으로도 딱히 들을 일 없는 유형이 있는데, '동조'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둘이 어떤 얘기를 해도 "맞아맞아" "님 말이 맞음ㅇㅈ"이라는 리액션를 하지 않는다. 주로 "그게 아니라" "아니죠 팀장님"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탄수화물로 얻은 에너지의 팔십퍼센트를 서로에게 반대하는 데 쓴다. 가끔 팩트를 갖고 싸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자료조사까지 하면서 싸운다. 그 어떤 종잡을 수 없는 열정을 서로에게 불태우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제도 셋이 술을 먹는데 둘이 또 투닥투닥거렸다. 난장토론의 주제는 팀장님발 '앞으로 회사에 정장 입고 다닐까'였다.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게 되게 중요하더라구... 고객사 만날 일도 많은데 나도 정장 입고 다닐까..?"
"아니죠 팀장님, 그건 너무 낭비적이죠. 정장이 얼마나 불편한데. 차라리 회사에 정장을 한 벌 갖다 두세요."
"나 이미 넥타이 세 개나 갖다 뒀어"
"넥타이만 있잖아요"
"그리구 회사에 두면 구겨져"
"그렇다고 맨날 정장을 입고 다닌다고요? 아니 그냥 약간 정장 느낌이 나는 옷을 사세요"
"싫어 그럼 엄청 신경써서 골라야 한다구 그러고 싶지는 않아."
"아니 팀장님 맨날 정장 입는 것보단 낫죠. 정장은 돈도 많이 들어요"
"아냐 한 다섯 벌 사 두고 요일 별로 입으면 되잖아"
"그것도 2년 정도마다 새로 바꿔야 될걸요? 그리고 정장 입음 아저씨 같아요"
"야 내가 아무리 신경을 안 써도 그런 걸 입겠냐?"
결국 "내가 그렇다면 좀 그렇다고 해주면 안돼?" "팀장님은 제 마음을 왜 그렇게 모르세요" 같은 100일 된 연인의 사랑싸움 같은 대화로 치달았다. 가끔 생생정보통에 나오는, 아웅다웅하며 사는 노부부를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술을 다 먹고 유일하게 '갈아만든 배를 먹자'는 부분에서 의견일치를 보고 편의점에서 갈아만든 배를 찾다가 없어서 탱크보이를 찾다가 그것도 없어서 그냥 나왔다. 각자 헤어지고 나서도 둘이 카톡으로 아웅다웅하는 걸 보는 재미에 집에 금방 갔다. 두 분 백년해로 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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