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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Sep 16. 2018

가-하

가을 하이라는 뜻

9월 아침의 바람에선 싸한 냄새가 난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알 수 있다. 어제와 같은 공기가 아니다. 초여름이 한여름이 되고 한여름이 늦여름이 되는 건 평지를 뚜벅뚜벅 걸어가듯 속도감이 없는 일이지만 여름이 가을이 되는 건 담벼락에서 펄쩍 뛰어 내리듯 갑작스럽다. 뚝 떨어진 온도는 무거운 오함마처럼 육중하다. 여름이 한창이다가, 아주 한창이어서 영원히 한창일 줄 알았는데, 세상에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할 만큼 강하게 몸 어딘가를 내려친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잠깐이다. '졸라 더운 날은 끝이구나' 하는 감동이 몸 속에 가득 차오른다. 차고 파삭한 공기를 오랜만에 먹는 과일처럼 귀하게 마신다. 될 수 있는 대로 깊게 들이 마시고 아련하게 뱉는다. 이 짓을 성에 찰 만큼 하고 나면 피부로 가을이 온 것을 알아채 본다. 바람이 손에 쥐어졌다 손바닥의 온도에 녹아 손금을 타고 흐른다. 골목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공기가 흐른다. 얇은 마분지 사이를 지날 때처럼 사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묘한 예감 같은 색깔의 하늘이 그윽하게 떠 있다.

골목을 나와 큰 길 횡단보도 앞에 선다. 길 건너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내가 탈 버스가 오는지 두리번거린다. 272번, 30-2번, 151번... 이제 머리 속에 가을은 없다. 가을은 문을 열고 열 걸음까지만 새롭다. 그 뒤부턴 익숙한 가을이다. 새롭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생활이 된다. 여름이 그랬던 것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가을은 공기 속에 배어 들고, 드러난 살이 시려오는 게 당연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가을의 성격과 말투 같은 것들. 찬 아침과 그런 아침이 생각나지 않는 온화한 낮과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밤 같은 것들. 그런 모든 것들이 권태로워지는 순간 겨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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