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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Oct 20. 2018

아버지는 도어락이 싫다고 하셨어

우리 집은 아직도 열쇠를 사용한다. 가끔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열쇠가 없을 때가 있다. 그럼 가족 중 누군가가 올 때까지 계단에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움직임 감지 센서 등이 꺼질 때마다 무술을 익히는 화랑처럼 팔을 휘휘 저으면서. 도어락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도어락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 문화적 가치, 심리적 이익 등을 따져가며 꽤나 열정을 다해 건의했지만 언제나 최종 결재 라인에서 반려되었다. 최종 결재자는 아빠다. 아빠는 도어락을 믿지 않는다. 도어락의 가냘픈 모양새라든지 삐리릭- 하는 고운 목소리 같은 게 한 가정을 지켜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눈에 칼이 들어오고 목에 흙이 들어와도 도어락만은 안 된다는 쓸데없이 강건한 마인드다. 아빠의 판단 회로는 주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남들이 좋다 좋다 할수록 오히려 의심해본다. 시대에 뒤쳐진 듯 보이더라도 스스로가 믿는 것을 고수한다. 가끔 TV에 ‘범죄에 노출된 전자 도어락!’이라는 뉴스라도 나오면 ‘봤지?’ 하는 눈빛을 보이곤 하는데 아빠지만 참 얌체 같고 그렇다.
 
아빠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는 고집스러움을 의식적으로 멀리해왔다. 어느 날이었다. 동기 하나가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미련한 자여, 글의 시대는 갔다. 대(大)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차라리 영상을 배워라.” 여러 번 들은 이야기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요즘 글쓰기란 고급 옷걸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쓰면 좋긴 좋은데 딱히 내세울 데는 없는 느낌. 애매한 수준이면 더더욱.

그래도 나는 꽤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화를 내고 망상을 실현하고 감성에 젖고 젖은 감성을 찢어발기고. 썸 타는 남녀처럼 가지가지 하는 편이었다. 가끔 꿈에 악령이 나타나 아무도 안 읽는 걸 똥 빠지게 쓴다고 낄낄거리기도 했지만 차마 그만둘 수 없었다.
 
글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 새로 배울 의지는 희박하고 할 줄 아는 건 없어서이기도 하고 동시에 글의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지금 고민하는 것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알아낼 수 있는 답이 아니라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힘이라도 갖게 되지 않을까.
 
이런 류의 믿음에 근거는 1도 없고 전적으로 주관에 따른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믿는 거다. 아빠가 도어락보다 열쇠가 우리 집을 더 잘 지켜줄 거라고 믿는 것처럼. 아빠에게 열쇠는 문을 여닫는 수단이자 어떤 상징이다. 가족을 지켜온 방식이고 집 밖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내게 글도 흰 모니터에 검은 글씨를 두드리는 것 이상이다. 열쇠와 글은 아빠와 나에게 실제 소용보다는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 아빠는 열쇠를, 나는 글을 고집하는 이유다. 닮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아빠의 고집스러움을 이런 식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굳이 고집까지 닮았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별빛처럼 새어 들어온다.


[대학내일 865호] 

https://univ20.com/9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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