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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Oct 20. 2018

예감

그 날은 유난히 하늘이 이상했다. 블루 레몬에이드 색 하늘 아래로 비를 잔뜩 먹어 배가 부른 먹구름이 떠 있었다. 배경과 개체의 조합이 어딘가 서먹해 조금 쳐다 보고 있었다. 예감은 아마 저런 하늘이 주는 느낌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한창 익숙하게 봐 온 것들이 초면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
  
하늘은 하늘 대로 문 밖에 두고 집에 들어 왔다. 창을 열어 두기엔 이제 많이 추워졌지만 그래도 앞 베란다의 창을 조금 열었다. 우리 집은 앞 베란다와 뒷 베란다가 거실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 그 사이를 오가는 바람으로 여름은 웬만큼 선선하게 보낼 수 있다. 열린 창으로 박하 향 같은 바람이 차게 들어왔다. 집 앞 놀이터에선 태권도복을 입은 7세에서 9세 사이의 아이들이 성실히 모래를 파며 놀고 있었다. 살기 썩 괜찮은 집이다. 근데 난 조만간 이곳을 나올 것 같다. 
 
4시간의 통근시간 때문이다. 4호선 종점인 오이도에서 서울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호빗도 아닌데 매일 뜻밖의 여정을 나서는 기분. ‘그래도 종점에서 오니까 앉아 올 수는 있겠다!’는 위로를 건네는 이들에겐 ‘그럼! 욕창 생길 때까지 앉아 있을 수 있어^^’라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했다. 
 
대학생 때부터 장장 5년이었다. ‘오이도면 섬에서 오는 거냐’ ‘배 타고 오느라 그렇게 오래 걸리냐’는 무수한 놀림의 역사. ‘좀 가깝던지' '아예 멀던지’ ‘애매하고 지랄’ 같은 불만의 날들. 무엇보다 대학생 때 밤 10시만 되면 술을 먹다가도 팀플을 하다가도 똥을 싸다가도 집에 가겠다고 뛰쳐 나가는 바람에 ‘씹(10)데렐라’라는 별명이 생겼을 땐 말도 못하게 수치스러웠다.

길고 긴 오욕의 세월 끝에 드디어 통장 잔고가 500에 30 방 한 칸을 구할 여력이 돼 자취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드디어 섬 탈출’, ‘코레일 재정에 타격이 클 것’ 같은 축하 카톡에 답하며 거실에 누웠다. 한참 킬킬거리며 카톡을 하다 팔이 아파 핸드폰을 내려놨다. 천장의 전등이 백발 노인처럼 머리에 먼지를 얹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앞 베란다에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몸 위로 스쳤다. 세필붓으로 콧등부터 가슴, 배, 발끝까지 쓸어 내리는 느낌이었다. 몸을 굴려 모로 누웠다. 창 안엔 낮에 본 낯선 하늘이 아직 담겨 있었다. 

저 창으로 참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주륵주륵 내리기도, 밝게 쏟아지기도, 새벽 같은 것이 흘러오기도. 초등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봐 온 창이었다. 여러 계절을 기다리고 또 보냈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꽤나 거창한 시간에 비해 조용히 기억되는 날들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고 나도 많이 컸다. 그 와중에도 집만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창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득 이곳에 살았던 시절 전체가 나를 떠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과 이별하든 나는 이 집으로 돌아왔고 가족들과 밥을 먹었고 창으로 익숙한 모양의 하늘을 보았다. 밖에서 어떤 낯선 것을 만나든 집에 오면 익숙함으로 주변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시절이 한 뭉텅이 째 나를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시절과 이 시절이 가졌던 정말 중요한 무언가와 곧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건 초겨울처럼 조금 서늘한 느낌이었다.
 
어떤 사실을 ‘알았다’기보다 ‘체감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어느새 도착해 있는 계절을 알아챌 때처럼, 언제나 옆에 있었음에도 나만 모르던 것을 문득 알아채는 기분이다. 시절의 흐름은 나에게 그렇게 소식을 알렸다. 팔로 머리를 받쳤다. 그대로 오래 가만히 있었다. 묘한 예감 같은 하늘이 그윽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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