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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몸살

by 빵떡씨

날짜: 2018년 12월 7일 금요일 | 날씨: 전국민 시밀러룩 입는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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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이건 각이다..
몸살 각이다...
입사 이래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야근하며 먹는 야식은 몸을 살 찌우고 택시 퇴근은 심신을 편안케 하니 아플 이유가 무엇이랴. 직장인의 3대 영양소 카페인, 타우린, 니코틴까지 챙겨 먹으니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이런 내가 몸살이라니. 아무래도 2주 전부터 살 빼겠다고 헬스니 뭐니 지랄 옘병을 한 게 원인인 것 같다. 사람이 야근하고 헬스하고 야근하고 헬스하면 살이 아니라 뇌가 빠지며, 퀭하고 헬쓱하니 아프냐는 소릴 듣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이젠 진짜 아프기까지! 운동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분명 운동 때문에 아픈 건데 산재 처리를 하고 싶은 건 기분 탓이겠지.

아침에 몸살 기운을 감지하곤 생각했다. '연차를 쓰자. 있어도 쓰질 못해 옆구리 살처럼 두둑히 쌓여만 있지 않나' '아니다 오늘까지 보고서를 완성해야 하지 않나' 노동자의 권리와 노예근성이 머리 속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격전의 소음은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다친 짐승의 울음 소리처럼 "끄으으...으허어.."하고 입으로 새어나왔다. 그때 '진짜 일어나야함' 알람이 총성처럼 울렸고 노예 해방을 부르짓던 머리 속 링컨은 뒤져버렸다. 결국 갓 태어난 새끼 노루처럼 바들거리며 이층 침대를 내려왔다.

머리도 못 감고 버스를 타러 갔다. 헤어스타일이 뭔가 대가리에 사선으로 스매싱을 맞은 것 같았다. 거의 걸어다니는 손현주 짤. 패딩처럼 생긴 비니루 사이로 바람이 스몄다. 눈물이 질금질금 났다. '나는 씨발 너무 불쌍하다. 태생이 열심히 살면 안 될 몸인데 야근에 헬스까지 하느라 이렇게 아프다' 자기연민이 점점 과해지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 울자. 반차를 쓰라는 말이 안 나오곤 못 배기게 하자' 속이 미식거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야무지게 그런 다짐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카톡을 켜서 동기방, 소모임방, 사원방 할 것 없이 아프다는 소식을 알렸다. 카톡으로 날아오는 걱정에 취해 각 잡고 좀 울어보려는데 이게 또 울려니까 잘 안 되더라. 온갖 서러운 생각에 엄마 생각, 돼지라고 놀림 받던 유년의 기억까지 동원해도 입만 움씰거리고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흐으응...하고 눈물샘에 시동을 걸어봐도 눈알이 헛구역질 하는 것처럼 폼만 잡을 뿐이었다. 한참 그러다 어두워진 모니터에 비친 울먹이는 손현주를 발견하곤 눈물 짜내기를 관뒀다.

점심시간에 병원에 갔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생명에 큰 지장 없으면서 전염성 강한 병'을 검색했다. 노로바이러스 정도 기대했는데 그냥 미열이라고 해서 약 타서 나왔다. 편의점에 들러 죽을 사먹었다. 버섯 전복죽이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설국열차에 나오는 프로틴 바를 걸쭉하게 녹인 느낌. 그런 생각까지 드니 아파서 토하는게 아니라 이걸 먹다 토하겠다 싶어 몇 숟갈 못 먹고 나왔다. 회사로 돌아가는데 아까는 안 나오던 눈물이 왈칵왈칵 나왔다. 회사 사람 누구라도 지나가다가 좀 보시라고 닦지도 않고 허엉헝 울면서 걸었다. 그 와중에 '이거 일기에 쓰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울다가 허헝흐ㅎㅎ허엉 웃었다.

결국 오후 내 끙끙거리는 사원을 보다 못한 팀장님이 반차를 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씨익 웃었다가 반차 못 쓸 뻔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거짓이다. 건강하게 일 하는 것보다 아프게 월차 쓰는 게 더 개꿀이더라. 열에 신음하며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 와중에도 업무 시간에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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