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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Jan 20. 2019

딴 생각의 조건

출근길의 정거장은(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 모두 포함) '강남역 전 부류'와 '강남역 후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강남역 전 부류 정거장에서 탑승하면 비교적 쾌적한 출근길을 누릴 수 있다. 사람이 적고 자리도 많이 남는다. 바로 자리에 앉지 못 하더라도 강남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빠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수혜로 빈 자리를 얻을 수 있다. 



강남역 후 부류 정거장에선 차에 타는 것부터 고통이다. 차는 이미 강남역에서 탄 사람들로 빽빽하다. 그들의 진공포장된 냉동 소세지같은 창백한 얼굴은 출근할 전의를 상실케 한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보는 각도로 낑겨 타기라도 하면 목례라도 나눠야 할 것 같은 수줍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강남역 전 부류 정거장과  후 부류 정거장 중 어느 곳으로 출근할지는 선택할 수 없다. 본인의 업보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연이다. 하지만 두 상황에서 누리는 혜택과 고통은 천지 차이다. 나는 운 좋게도 강남역 전 부류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내가 차에 탈 땐 좌석의 70% 정도만 차 있다. 차 내 인구 밀도는 '혜화동 로터리'에 가까워질 수록 높아지다가 서울대 병원 앞에서 정점에 이르고 다시 조금씩 감소하는 양상이다. 



오늘도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전광판에 (여유)라고 표시 된 273버스가 들어온다. 탑승. 적당한 자리에 앉는다. 이어폰을 꽂고 우주소녀의 '부탁해'를 튼다. 사색에 잠기기 좋은 노래다.



창 밖의 마른 나뭇가지가 아이폰 액정에 난 금처럼 파리하다. 이렇게 버스에 실려 회사에 나간지도 1년 반. 하루에 8시간에서 길면 15시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아예 못 할 정도는 아닌, 잘 하진 않지만 평타는 치는, 그래서 계속 하긴 싫은데 관두기도 애매한 그런 일을 한다. 어느 하나 아주 좆 같다 싶은 게 있으면 '이것 때문에 못 해먹겠다' 운운하며 때려 치겠는데 참을 만하게 좆 같다 보니 그러기도 좀 머쓱하다.



플레이 리스트가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넘어갔다. 작년으로 내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끝났다. 스물한 살에 이 노래를 들을 땐 '스물다섯이라니 어쩜 너무 늙었어 불쌍해'하는 연민 어린 감상뿐이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말처럼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내 인생 곡선도 이제 성장을 지나 노화의 단계에 들어섰다. 곧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이과두주를 한숨에 털어넣을 날이 오겠지. 뭐 그건 좀 괜찮네. 나쁘지 않아.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니 앞으로 어떻게 노화할 것인가에 대한 근심이 미간에 주름처럼 드리웠다. '난 지금 하는 일을 하며 늙고 싶진 않다. 난 빵을 굽고 싶다. 나무를 다듬어 소반을 만들고 싶다. 흙을 빚어 작은 접시를 만들고 싶다. 손에 쥘 수 있는 앙증맞고 따뜻한 것을 만들며 살고 싶다.' 인간은 왜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을까. 삶.. 죽음... 정체성....



'이번 정류장은 이화 사거리, 이화 사거리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전광판을 보려 고개를 들다가 초등학생이랑 눈이 마주쳤다. 위대한 개츠비의 디카프리오 같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두리번 두리번. 차는 만원이었다. 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탔지.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삼단 샌드위치 속 올리브처럼 세 겹으로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갔다. 남자에게 밀쳐진 아주머니의 얼굴이 타노스처럼 구겨졌다. 삼단 샌드위치 중 중간층에 낀 아저씨는 세 번째 손가락 손톱 부근 근육으로 겨우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무언가를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오직 심신을 지탱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단상 거리일 것이다. '어디에 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저 여자가 왠지 다음 정거장에서 일어날 거 같아, 가방이 너무 무겁다, 사람들한테 덜 치이려면 문 앞보다 뒤쪽이 낫겠지, 잽싸게 옮겨야지, 가방이 진짜 대단히 무겁다, 롱패딩이 더워서 겨땀이 나네, 밖은 추워서 지랄 안은 더워서 지랄, 뒷 사람이 너무 민다, 무릎이 낀 거 같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이 좀 생기겠구만 사람들 참, 가방이 전폭적이고 가공할 만하게 무겁구나' 같은 생각들. 



만원 버스에서 '서서 가는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같은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도 자리에 앉아서 간다면 세상의 진리나 이념, 정치, 정의, 문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주제는 사람에 따라 정해지기도 하지만 높은 확률로 상황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상황은 보통 우리의 소망과는 별개로 부여된다. 그러니 나는 잠시 진지한 생각에 잠겼다고 해서 철학자가 된 듯한 우쭐함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사념은 '앉아서 가는 사람'이 우연히 얻은 사치품 같은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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