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부터 우울한 관상이야...
나는 즐거운 백수 생활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휴, 빨리 취직하고 싶다, 돈 벌어야 하는데, 라며 되게 피죽도 못 얻어 먹고 다니는 얼굴을 하곤 하지만 사실 집밥을 엄청 잘 먹고 있으며 이렇게 취직 안 하고 좀 더 놀고 싶다. 젖과 꿀이 흐르는 부모님 슬하... 이러다 구직활동을 아예 접는 건 아닐까. (※어머니가 이 글을 싫어합니다)
그래도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고 취직하려는 시늉은 열심히 했다. 시늉 중에 알게 된 건데, 나는 서류합격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두 달 좀 넘는 동안 서류를 네 번이나 통과했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취직을 못했다는 건 신께서 자소서 쓰는 재능을 주신 대신 면접 잘 보는 재능을 앗아갔다는 뜻이다. 왜 이런 데서 공평하고 지랄이신지…
다행히 면접을 볼 때마다 조금씩 배우는 게 있긴 하다(물론 아무것도 안 배우고 그냥 합격하는 게 최고). 제일 크게 깨달은 건 지원한 회사에 맞게 자아성형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면접관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1년 전 첫 인턴 면접 다이얼로그>
Q. 효정씨는 본인의 단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A. 어…저…(어눌) 낯을 좀 가려서…(낯을 가리면 안 되는 에디터에 지원했었다)
Q. 아 낯을 가리면 탈라ㄱ… 아니 취재할 때 힘들 텐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A.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는 표정)글쎄요…
쓰다 보니 자아성형이고 뭐고 그냥 전반적으로 병신이었다. 성형할 자아조차 없던 게 아닐까. 아무튼 저런 대화를 피하려면 기업 성격과 직무 특성에 맞는 타입으로 자아를 바꿔야 한다. 똘똘하면서도 고분고분한 신참을 선호하는 데가 있고(주로 공기업) 당당하게 할 말 다 하는 사람을 뽑는 데가 있다(주로 젊은 기업이나 기자 직무). 에 또… 모르겠다, 사실 나도 좆도 모른다. 그나마 내가 면접 본 회사들을 떠올려 보자면,
대기업 MD: 똘똘함+인내심+긍정적
중소기업 마케팅팀: 당당함+도전적+긍정적
잡지사 에디터: 위트+자신감+긍정적
보다시피 기업 종류와 직군을 불문하고 필요한 성향이 있다. 긍정적 마인드. 사실 나도 '다 잘 될 거야'를 넘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할 만큼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인데,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곤 한다. 그래서 면접 전에 스스로 세뇌한다. “난 긍정적이다… 활기차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하다 보면 처음에 솔이었던 목소리가 끝날 땐 낮은 시가 돼있다. 그 후엔 그냥 좀 졸리고 우울해 보이는 상태로 답을 하고 나온다. 이런 푸념을 하면 동생은 “야 시발 너는 니가 할 수 있는 가장 밝고 high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안 그럼 진짜 무기력하고 삶에 좆도 미련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니까. 어? 말을 해줘도 어? (심한욕) (나쁜욕)”이라고 응원과 위로를 해준다.
나는 우울과 무기력이 내 성격에서 이마만큼 핵심적인 요소인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아이덴티티라 해도 무방. 성형이 아니라 재개발이 필요하다. 멍청한 건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지만(아닐 수도) 우울함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대충 염색된 싸구려 청바지의 파란 물처럼 자꾸만 묻어나온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밝은 척을 해볼까. 그럼 좀 밝아질까. 실제로 노력도 안 해본 게 아니나 언제나 우울이라는 기본값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 과정에서 난 모순적으로 내가 내 성격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이든 떠나 보낼 때 필연적으로 남는 미련인지 몰라도, 내 우울함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톤 다운된 차콜색 같은 성격은 차분히 읽고 쓰기에 좋다. 방방 뜨는 법이 없이 착 가라앉는 편이라 생각에 빠지기도 좋다. 유난스럽지 않다며 날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에겐 꽤 괜찮은 성격인데 이걸 누구한테 쓸모 있는 것처럼 보여주려니 힘든 거였다.
기업도 돈 벌어야 하는데 쓸모 있는 놈 뽑아야지. 이해한다. 나도 그에 발맞춰 열심히 명랑한 척 해야지. 어느 날 내가 인사도 되게 잘 하고 지하철에서 아이가 빽빽 울어도 “작은 악마야 입 좀 다물렴”이 아니라 “어쩜 우는 것도 사랑스러워”라는 눈으로 본다면 아마 면접 보러 가는 길일 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면접은 그렇게 보되, 평소엔 내 우울을 그대로 가져갈 거다. “이것도 다 개성이야!”라고 하면 좀 뻔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진 건 가진 대로, 없는 건 없는 대로 살고 다만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만 잃지 않아야겠다. 그게 단순하고 명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