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별로인 사람들에게
대학교 2학년 때 뚜레주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학교 안에 있었고 학생증을 보여주면 10% 할인이 됐다. 학생들은 점심 시간 후나 수업 쉬는 시간에 와서 수혈이 필요한 환자처럼 다급하게 아메리카노를 찾았다. 가게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1시에서 3시 사이엔 문 밖까지 줄을 섰다. 알바생들의 노동 환경은 마치 공장제 수공업의 그것과 같았다. 누구는 손목이 나가게 샷을 내렸고, 누구는 오른팔 삼두근을 단련하며 얼음을 펐고, 누구는 성능 좋은 펌프처럼 물을 채웠다. 여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30개 정도 미리 만들어 두고 손님이 "아이스 아.."까지 말하면 제빨리 손에 쥐어주고 보내버렸다.
일이 고된지라 알바생이 자주 바뀌었는데, 그런 중에도 장기근속을 자랑하는 우수 알바생 3명이 있었다. 일어일문학을 전공하는 언니가 넘버1, 황우슬혜 닮은 언니가 넘버2, 그나마 상냥한 언니가 넘버3였다. 셋 중에서도 일어일문학과 언니는 서열 1위 답게 독보적으로 일을 잘했다. 뚜레주르 빵팔이학과라도 다니는 것처럼 3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해치우는 가성비를 보였다. 하지만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만큼 히스테리도 대단했습니다.
내가 처음 알바를 하러 간 날, 넘버1,2,3 언니들은 새로운 알바생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 매던 앞치마를 매고 나르던 얼음을 나르고 내리던 샷을 내렸다. 나는 사장님이 가르쳐 준대로 리더기에 지문을 찍었다(출퇴근할 때 지문을 찍어서 일한 시간을 표시했다). 넘버1 언니는 "유니폼 입고 찍어야죠. 옷 입는 동안 일해요? 안 하잖아요"라고 100번도 더 말한 걸 101번 째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냉장고에 우유를 넣을 때도 넘버1 언니는 행여나 그냥 말하면 내가 못 알아 들을까봐 "뭐 하는 거야!! 유통기한 빠른 거부터 채워야지!!!"라고 소리를 빽 질렀다. 지금 같으면 그 자리에서 알바몬을 켜고 다른 알바를 구했을 텐데, 어리바리한 21살 효정이는 '어이쿠 내가 큰 실수를!'하며 우유를 가지러 부지런히 주방에 갔다. 주방 이모는 "또 애를 잡네"하면서 썰고 있던 바게트한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알바는 주욱 그런 식이었다. 언니는 "아 비켜" "빨리좀해" "뭐하는데" 같은 말을 시속 90마일 귓속 꽉찬 돌직구로 꽂아 넣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알바 갈 시간만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밥이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가는 다이어트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난 언니한테 잘했다. 잘 웃고 말 잘 듣고 비위도 잘 맞췄다. 언니는 나쁜 사람일지라도 나는 언니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신념은 없었어도 누구에게든 착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은 절실했다. "우리 효정이 착하네"에 길들여져서였을까. 알바를 몇 달 하다 보니 넘버1 언니가 나 말고도 모든 알바생을 혼낸다는 걸 알았다. "그 언니 때문에 알바생 여럿 그만뒀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엄마를 찾은 아이처럼 안도했다. 내가 잘못해서 혼나는 게 아니라 언니가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난 잘못이 없어, 난 좋은 아이야. 그땐 그게 제일 중요했다.
알바 일은 크게 계산과 음료제작으로 나뉜다. 계산 담당이 영수증을 벽에 붙이면 음료제작 담당이 그걸 보고 음료를 만든다. 여느 날처럼 졸라 바쁜 점심 타임이었다. 넘버2 언니가 계산을 하고, 난 음료를 만들었다. 넘버2 언니가 영수증을 벽에 붙이려 팔을 뻗는데, 눈을 포스기에 고정하고 있어 벽 앞에 있는 나를 미처 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내 눈알에 주먹을 내지른 꼴이 됐다. 당시 내 눈은 갓 라섹 수술을 한 따끈따끈한 신상 눈이라 비비기만 해도 아팠다. 왼 쪽 눈에서 눈물이 질질 흘렀다. 넘버2 언니는 엄청 미안해 했다. 그리고 넘버1 언니는 "바쁜데 그러고 싶니"라며 날 치고 지나갔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왼쪽 눈에 눈물이 조금 맺히는 것 같습니다.
그날 후로 넘버1 언니를 저주하기로 다짐했다. 별것도 아닌데 참 야무지게도 그런 마음을 먹었다. 일을 하다가도 언니를 한 대 치는 상상을 했다. 언니가 뜨거운 물에 손이라도 데서 알바를 못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지 않을 만큼 다쳐서 학교도 못 나오길 바랐다. 아니 어디서 죽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자신이 있었다. 처음엔 이런 마음을 부정했다. 나는 누굴 저주할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내 앞에 얼쩡대지만 않는다면 다치든 죽든 알 바 아니었다. 언니를 미워하기 위해선 나도 못된 년이어야 했다.
그 어떤 열정을 다해 미워했던 시절이 지나고, 지금은 더 자주, 쉽게, 차갑게 누군가를 미워한다. 일단 완벽한 착함에 흠이 생기면, 다음부터 누굴 미워하기란 어렵지 않다. 착한 어린이 신화는, 스스로가 별로인 사람이 되면서까지 증오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 깨진다. 그 후엔 누구 말처럼 '천국에 갈 만큼 선하진 않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억울한' 심성을 갖고 사는 듯합니다. 어정쩡하게 착한 상태로, 스스로 착하다는 데에 별 자부심 없이. '나 원래 나빠'라는 약간의 위악으로 홀가분해 지기도 하며. '착한 건 바보같은 것'이라는 의아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별로로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괜히 '나는 좋은 사람인데 왜 이런 나쁜 생각을'이라며 괴로워 하는 것 보다 '어휴 또 병신 같은 생각을'하며 의식적으로 자중하는 게 낫더라구요. 지금은 존나 별로지만 노력하여 덜 별로가 돼보자는 으쌰으쌰도 가능하고요. '내 인성엔 전혀 문제가 없어요'보다 '내 인성엔 약간 문제가 있지만 피해 주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가 제겐 더 어른스럽기도 합니다.
+넘버1 언니, 언니의 호된 가르침 덕에 어느 알바를 하든 일 잘한단 소리를 듣습니다. 제게 이런저런 깨달음을 주어 감사합니다. 언니도 꼭 언니 같은 상사 만나 저와 같은 깨달음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