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으로 원기옥 쏘는 펭귄을 보고 싶다면
나와 동생 사이엔 금지어가 있다. 독일 관련된 말은 금지. "독일 가고 싶다" "독일 있을 때 좋았는데" "독일 총리는 메르켈" 등등.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독일 장난감 가게의 불빛이 눈 앞에 날아들고 호두깎기 인형 장인의 나무 다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베를린의 어느 복작한 술집에서 맡았던 슈니첼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 원래 아무것도 안 하던 우리는 아련해져서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아, 그리운 독일.
우린 특히 오스나브뤼크를 자주 회상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찍을 법한 촌구석이다. 내 동생 효석이는 거기서 6개월 간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효석이의 여자친구 준희는 효석이를 따라 오스나브뤼크로 3개월 간 여행을 갔다. 나 역시 독일 여행 중이었는데 돈도 떨어지고 춥고 외로워서 동생 내외가 있는 오스타브뤼크로 갔다. 숙박비가 없던 나는 준희에게 "재워달라"고 했다. 준희의 숙소는 맘씨 좋은 아스트리드 씨가 에어비엔비를 하는 반지하 집으로 천장이 낮고 흰 페인트 칠이 돼있었다. 아늑한 가정집이었다. 여자친구 집에 놀러온 효석이는 나를 발견하고 "양아치가 아니냐"는 감상을 전했다.
나는 당시 도난과 독감으로 잘하면 독일에서 생애 첫 구걸을 해볼 참이었기 때문에 돈과 몸을 아껴야했다. 요양하는 마음으로 어디 안 가고 숙소와 동네만 다녔다.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잤다. 아침엔 시리얼이랑 식빵을 먹었다. 낮엔 준희랑 산책 하고 집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다. 동네 고양이 싹스가 오면 창문을 열어 들어오게 했다. 책을 읽었다. 커피를 마셨다. 싹스가 나가겠다고 버둥거리면 문을 열어줬다. 수업 끝난 효석이가 놀러 오면 마트에서 장을 봐 와 저녁을 먹었다. 짜글이도 해먹고 냉동 닭고기도 오븐에 구워 먹었다. 브라우니도 만들어 먹었다. 밤엔 맥주를 마셨다. 보드게임을 했다. 티비엔 독일 방송만 나와서 볼 수가 없었다.
하루는 효석이가 "한국에서 쳐박혀있지 왜 독일까지 왔냐"며 날 오스나브뤼크 동물원에 데려갔다. 당시 1월이었고 독일은 눈이 자주 내렸다. 눈은 내린 즉시 얼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밖에 나와 있는 동물이 거의 없었다. 역시 동물 보호가 잘 돼 있는 나라였다. 덕분에 내 입장료 12유로는 보호받지 못 했다. 동물이 없어 동물원이라기 보다 '동물 생가'에 더 가까웠다. 아쉬워 하던 중에 코뿔소 우리에 금이 간 걸 보고 우리 안에 동물이 없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남아있는 동물들은 추위에 단련되어 용맹-이 지나쳐 흉포-해져 있었다. 앞머리를 이마에 엣지있게 널어 놓은 가젤은 상접한 피와 골을 드러내며 온 몸으로 굶주림을 어필했다. 멧돼지는 부정교합이 심해 보이는 송곳니로 으득으득 소리를 내는데 자꾸 눈까지 마주치는 걸 보니 나를 관람객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응 아니야, 응 먹이 아니야. 가장 기대하고 간 펭귄 우리에선 펭귄들이 하늘로 주둥일 벌리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꼬ㅑ아아ㅏㅏㅏㅏㅏ악ㄱㄱㄱ) 좀 더 있었으면 목구멍으로 원기옥 쏘는 걸 봤을지도 모른다. 콧물도 흐르고 더 있기도 을씨년스럽고 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여느때처럼 저녁을 먹고 보드게임을 했다. 준희가 타 준 따뜻한 테라플루를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오늘 간 동물원을 떠올렸다. 사실상 최악의 동물원이었다. 그런데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그냥 평온했다. 테라플루와 술기운 때문에 몽롱한 채로 이 낯선 평온에 대해 생각했다. 에펠탑 보러 파리 갔다 송전탑 보고 온 상황임에도 왜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나는 동물원이 갖는 맥락적 의미가 변했다고 판단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한 수식어를 쓰겠다. 보통 동물원은 '나쁨'의 상태에서 '좋음'의 상태로 가기 위한 수단이다. 일상은 나빴고 중간 중간 '나쁨'을 희석시킬 '좋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린 동물원도 가고 피크닉도 간다. 그런데 '좋음'이라고 기대한 동물원에서마저 '나쁨'을 경험하면 굉장히 속이 상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동물원은 그런 맥락에 있지 않았다. 독일에서 일상은 '좋음'이었다. 그래서 동물원이 '나쁨'을 제공해도 그다지 속이 상하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가면 '좋음'이 있으니까.
나는 독일에서 일상을 좋음으로 바꾸는 몇 가지를 경험했다.
첫째, 자유. 우리 셋 사이엔 권력관계가 거의 없었다. 그것은 우리 셋에게 자유를 가능하게 했다. 예상 가능한 행동범위에서 벗어나는 소소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밤 중에 산책을 하거나 갑자기 술 한 병을 사러 마트에 가거나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거나 먹지 않고 싶을 때 먹지 않기). 이런 자유는 그 사소함에 비해 훨씬 많은 행복을 준다. 하지만 그 사소함에 비해 일상에서 상당히 많이 거절당한다.
둘째, TV 없음. TV를 보지 않으면 고립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고립감 속에 느껴지는 안락함이 있다. 특히 TV를 볼 시간에 보드게임을 하고 있자면 모든 시대적, 사회적 이기와 폐혜로부터 우리 셋만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영화 <몽상가들>에서 세 명의 청년들이 밖에선 혁명이 일어나든 말든 집에 틀어 박혀 몽상을 즐기며 사는데,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고립 상태는 아무런 변수 없이 우리끼리 온전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란 안정감을 준다.
셋째, 미래 없음. 정확히 말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음이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기한이 한정적이다. 즉, 미래가 없다. 그래서 오늘 뭐할까, 당장 뭐할까를 충족시키면 다른 불안은 없다. 일상은 항상 미래와 이어져 있어 아드윽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여행은 일상을 절단해 미래를 잠시 끊어낸다. 대부분의 여행이 이런 해방감을 주고 그래서 우린 자꾸 떠나고 싶은 것이다. 이곳의 일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두고 온 일상이 계속 눈에 밟힌다.
글이 생각보다 지나치게 길어졌는데, 글의 요지는 겨울엔 오스나브뤼크 동물원에 가지 마시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