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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May 14. 2019

[글로그 11] 노인정 인싸

주말마다 본가가 있는 오이도에 간다. 오이도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를 볼 수 있다. 우리 할머니는 우렁차고 괄괄한 분이다. 요즘은 기력이 전 같지 않으시지만, 한창 때는 손자 손녀들을 이년 저년 망할년 샹노무년으로 호령하곤 하셨다.


 "너느은~ 할미가아 어이? 이렇게 두 눈 시이~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얼굴 한~번을 안 비치고 어이? 쌍노무년 할미가 너거 어릴 때부터 작은 집 큰 집 작은 집 큰 집 왔다갔다 하면서 그흐~ 더운 여름에도 왔다갔다 하면서 느히를 으뜨케 키웠는데 쌍노무 가시내들..." 같은 류의 얘기를 지치지도 않고 하셨다. 그 성질만은 고이 간직하신 채 90세가 되셨다. 그런 할머니가 애용하는 드립이 있다.




 "어머니,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이 나이에 뭘! 쓰던 거 쓰다 죽는 거지!"


 "할머니 봄에 쓸 양산 사드릴까요?"


 "양산은 무슨! 내년 봄에 저 세상에서 쓰겠네!"


 "할머니..."


 "아이고 됐다! 싫다 싫어! 늙으면 죽어야지!"


90세 이상 특 드립이다. 나는 노년의 극단적 쿨함에 빵 터지다가 아차 싶어 급히 정색하곤 한다. 할머니는 '곧 죽을 건데 뭘'하는 일관된 전제를 바탕으로 병원도 싫다 새거도 싫다 뭔지 몰라도 일단 싫다 하신다. 이러니 핸드폰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집전화 놔두고 뭐 한다고 돌아댕기면서 전화를 하냐는 거였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할머니 연세가 연세인지라 걱정이 많았다. 할머니가 혹시나 쓰러질 수도 있고 혹시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혹시나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고 어머니 제발요 부탁좀 드립니다 하며 겨우 폴더폰 하나를 장만해 드렸었다.




그 후로도 핸드폰은 오랜 시간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못 했다. 할머니는 핸드폰이 울리면 가끔 받고, 당신 내키실 때만 가끔 거셨다.


 "여보세요"


 "어 나다"


 "네 어머니"


 "나 노인정에서 밥 먹고 간다"


 "아 그럼 언제 오ㅅ.."


 --뚜뚜뚜---


 "...어머니?"


그 마저도 전보 치듯이 당신 할 말만 하고 끊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요즘 어딘가 수상했다. 자꾸 스마트폰 얘기를 꺼내시는 거였다. 나 90인데 요즘 내 동년배들 다 서마터폰인지 뭔지 쓴다, 요즘 내 핸드폰이 자꾸 꺼지고 이상하다, 그렇다고 사달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꼭 사주겠다면 마다하진 않겠다, 는 흐름의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말 끝을 길게 끌며 높낮이를 주는 스타일이여서 한 곡의 스마트폰 타령처럼 들렸다. 엄마 아빠는 그 주 주말 할머니를 모시고 하이마트에 갔다.




엄마 아빠는 늘 사드리던 폴더폰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른 곳으로 아장아장 향하셨다. 판판하고 매끈한, 노인정에서 많이 본, 다른 할머니들이 하나씩 갖고 있던 스마트폰 앞에서 요지부동이셨다. 누가 봐도 스마트폰을 사고 싶은 눈치였으나 결코 본인 입으로 말하진 않았다. 자식들이 눈치껏 알아서 사 주면 못 이기는 척 억지로 받을 요량이었던 것이다.




 "어머니 스마트폰이 마음에 드세요?"


 "뭐 늙은이가 마음에 든다 안 든다가 있냐"


 "그럼 폴더폰으로 보시죠 스마트폰은 쓰기 좀 어려우실 텐데"


 "그까이꺼 배우면 되지!"




우리 가족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이토록 강력한 의견 피력이라니. 할머니가 뭔가를 배우면서까지 갖고 싶어 한다는 게 놀라웠다. 이 정도면 그냥 사달라는 뜻이었다. 하이마트를 나오는 할머니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었다.




할머니의 구매 의지는 놀라웠지만 고집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내가 유년시절부터 꾸준히 부리던 생떼와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생 땐 탑블레이드를, 중학생 땐 노스페이스를, 고등학생 땐 PMP를 갖고 싶어 했다. 당시엔 탑블레이드와 노스페이스와 PMP 없인 등교할 수 없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다른 애들도 다 갖고 있었으니까. 할머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다 갖고 있는 게 내게만 없을 때 드는 뭔가 쎄하고 의기소침한 기분. 다른 노인정 할머니들과 당신 사이에 벽이 생긴 기분.




할머니는 한 마디로 '인싸템'이 갖고 싶었다. 인싸라는 말은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 하지만 주류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오래된 것이다. 10대, 20대에 한정된 욕구도 아니다. 90의 할머니가 스마트폰을 배우게 할 만큼 노년층에도 강력하게 작용한다. 누구나 마음 내밀한 곳에선 인싸가 되길 원한다. 나는 '누구나 원하는 것'을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바랄 때면 종종 놀란다. 예컨데 외할머니가 눈썹 문신을 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새로운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할 때, 할머니가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할 때. '에 그것은 젊은이들만 하는 거예요'라고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나는 잠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늙으면 욕구가 점점 사라진다' '그들은 더 나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요즘 할머니는 스마트폰에 대한 학구열을 불사르고 계신다. 생각보다 스마트폰이 '그까이꺼'는 아니었나보다. 할머니는 모든 아이콘을 너무 꾸욱 누르는 경향이 있다. 화면의 아무 곳이나 만져 필요한 앱을 끄고 다른 앱을 키는 독특한 취향도 있다. 덕분에 엄마는 목이 쉬어버렸다.


 "어머니 이걸 누르는 게 아니라 스윽 미세요 아니 스-윽 어머니 봐봐 이렇게 스으-윽 미시라니까 아니 미시라니까..."


폴더폰을 쓸 때는 그나마 전화를 거실 수는 있었는데 이제는 겨우 받기만 하신다. 핸드폰의 성능은 좋아졌으나 쓸 수 있는 기능은 줄어든 신비한 현상. 스마트폰의 입장에선 상당히 기구한 운명이다. 하지만 할머니를 노인정 인싸에 한 걸음 가깝게 해주었으니 그것으로 스마트폰은 제 역할을 다 한 게 아닐까. 아마 노인정에 가서 이렇게 말씀 하셨겠지


 "아아니 내가 그릏ㅎ케 필요 없다 했는데도 쿠후우~지 굳이 사준다는 거야 아들 놈이이 내가 뭘 어떡허겠어 그냥 받았지 뭐어 아이 나는 안 받겠다구 했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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