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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Jul 04. 2019

[글로그 20] 키보드와 스타렉스

자동차는 스무살이 되면 폐차장으로 가겠다는 진로 설정이 확고해진다.

키보드를 샀다. 기계식 키보드다. 흰색 바탕에 하늘색 LED 불이 들어와서 아쿠아적인 느낌이 난다. 이 키보드에는 숫자 키가 없다. 이런 키보드를 '텐키리스' 키보드라고 한다. 0부터 9까지, 10개의 숫자 키(ten key)가 없다고 하여 텐키리스란다. 숫자 부분이 없다 보니 가로 길이가 짧아서 귀엽다. 마우스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도 넓다. 회계 업무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텐키리스 키보드도 쓸만 하다.




키보드를 사면서 키보드 상식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키보드는 청축, 적축, 갈축으로 나뉜다. 키감과 달칵거리는 소리에 따른 분류다. 청축은 키를 파워풀하게 눌러야 하고 소리가 크게 나는 편이다. 보통 PC방 키보드가 청축이다. 적축은 반대다. 작은 압력에도 쉽게 반응해 손에 무리가 적다. 소음도 거의 없어 사무실에서 쓰기 좋다.




세상은 흑백논리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키보드 역시 그렇다. 청축과 적축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게 갈축이다. 청축처럼 통쾌한 달칵거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달칵거리긴 하고, 적축처럼 키감이 부드럽진 않지만 청축처럼 센 압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갈축을 설명하는 문구에는 '어느 정도', '약간', '적당히' 같은 부사가 많다. 어느 정도란 어느 정도이고, 약간은 얼마나 약간이며, 적당하다는 건 누구에게 적당할까. 나는 그 애매함에 끌려 갈축 키보드를 구매했다.




5만원 정도였다. 기계식 키보드 치곤 비싼 편이 아니지만 내 평소 소비를 생각한다면 비싼 편이었다. 누군가 내 소비생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매고 있던 가방을 그의 눈 앞에 디밀 것이다. 그 가방은 몇 년 전에 이니스프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 흰색과 초록색이 적절히 배합된 에코한 가방이다. 무엇보다 이니스프리 로고가 잘 안 보이는 게 장점이다. 내 최애 가방으로 일주일에 8일 정도 들고 다닌다.


나는 지갑도 상당히 오래 쓰고 있다. 내가 스무살이 될 때 엄마가 준 짝퉁 루이비통 지갑이다. 짭이비통은 이제 가장자리가 다 헤지고 지갑을 잠그는 똑딱이도 망가졌다.


다들 내 가방이나 지갑을 보면 "좀 바꿔라" 라고 하는데 그 때 "아직 멀쩡해"라고 말하면 대단히 뿌듯하다. 아주 근검절약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그것들을 계속 들고 다닌다.




이런 나도 어쩔 수 없이 과소비를 할 때가 있다. 어떤 제품에 꽂힐 때다. 한 번도 필요한 적 없던 기계식 키보드가 갑자기 사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꽂혔던 제품은 안경, 만년필, 가죽 다이어리 등이 있다. 동생은 "모두 허영심과 관련이 있구나"라고 했다.


"그런 것에 돈을 쓰는 건 너의 마음을 허하게 할 뿐이야"


동생은 이 말을 남기고 총총히 자신의 삼백여덟 번 째 피규어의 먼지를 털러 갔다. 소비만큼 인간의 모순을 잘 보여주는 건 없다.




과소비라고는 했지만 사실 몇 십 만 원 짜리를 산 적은 없다. 들인 돈이 너무 많으면 뭔가를 소유했다는 행복보다 어떻게 뽕을 뽑을까 하는 의무감이 더 커진다. 그래서 너무 큰 돈은 쓰지 않는다. 물론 1차적으로는 큰 돈이 없다.


내가 하는 과소비는 주로 5~10만 원이다. 그 정도 규모의 소비를 할 때는, 그러니까 만년필이나 가죽 다이어리처럼 쓸 데 없는 것에 돈 십만 원을 쓸 때는 VAT처럼 가격의 10% 정도의 죄책감이 든다. 찾을 수 있다면 죄책감 듀티프리 가게를 찾고 싶다.




이 죄책감은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은 아니다. 이 돈을 버느라 용을 쓴 과거의 나나 부족한 생활비에 쪼들릴 미래의 나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효정이는 돈을 써서 과거의 효정이가 용쓰고, 미래의 효정이가 쪼들리는 명분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이러려고 돈을 버는 것이다 흐흐'


그러면 무엇에 대한 죄책감일까. 과거부터 아껴써라 소리를 뻔질나게 들어서 생긴 습관성 죄책감일까. 그런 비합리적인 죄책감이라면 더 이상 시달리지 않고 쓰고픈 대로 돈을 써도 되지 않을까. 7천원 주고 청포도 에이드 사먹고, 만2천원 주고 팬케이크 사먹고, 5만원 주고 네일 받고,,, 내 돈 쓴다는데 알 게 뭐야 정말,,,


그런 생각을 하며 아빠 차에 올라 탔다. 나는 주말에 오이도 본가에 내려가는데 아빠가 종종 일요일 저녁에 나를 다시 서울에 데려다 준다. "안 데려다 줘도 돼"라고 튕기면 진짜 안 데려다 주기 때문에 나는 바로 얻어 탄다.




아빠 차는 스타렉스다. 내가 10살 때 샀으니까 15년이 넘은 차다. 당시에도 중고로 샀으니 진짜 나이는 스무살 정도일 것이다.


혹시 성년이 된 스타렉스를 타 본 적이 있는가? 자동차는 스무살이 되면 폐차장으로 가겠다는 진로 설정이 확고해진다. 우리 아빠 같은 끈질긴 주인이 놓아주지 않으면, 자동차는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반항을 한다. 기름을 질질 흘리고, 문에서 으드드드 소리를 내고, 추우면 아이폰처럼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아빠도 차를 바꾸고 싶어 한다. 기운 센 젊은 멋쟁이 같은 JEEP 차나 차려 입은 마동석 같은 랜드로버가 지나가면 "이야 차 좋다" 하며 감탄한다. 그 소릴 들은 우리의 스타렉스는 마음이 상해 더 크게 툴툴거린다. 그럼 아빠는 "이게 또 왜 이래" 하고 문짝을 퍽퍽친다. 스타렉스는 아프면 잠시 조용해진다.




뭐든간에 아빠 손에 들어가면 10년은 노역을 해야 풀려날 수 있다. 아빠의 늙은 물건들은 쿨럭쿨럭 끼익끼익하는 효과음을 낸다. 이 때문에 아빠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은 뭇 제품들에게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슬퍼하긴 이르다. 아빠의 소유물이 될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뭔가를 살 때 고심을 거듭한다. 우리 아빠는 운동화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지금 한 200켤레의 운동화가 아빠의 쇼핑몰 장바구니에서 나오질 못 하고 있다. 아빠에게 pick되려는 운동화들의 경쟁이 프로듀스 101인 줄. 그런 아빠를 보고 있자면 10만 원 주고 한 내 염색머리의 처지가 꽤 곤란해진다. 가까이에서 뇌가 자꾸 '이 염색 값이면 아빠 운동화가 몇 켤레...'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이면 치킨이 몇 마리..' 하는 사고방식과 같은 원리다.




소비가 어떤 선을 넘으면 죄책감이 드는데 내게는 그 '어떤 선'이 바로 부모인 것이다. 부모는 내 씀씀이의 기준, 죄책감의 on/off 버튼이다. '내 친구들은 이 정도 쓰는데'가 소비를 합리화 시킨다면, '내 부모는 이 정도 쓰는데'는 삼성페이를 가로막는다.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과소비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뜨끔하는 기분이 든다. 더우면 땀을 흘리고 슬프면 우는 것처럼 자율신경계가 작동하는 것 같은 느낌.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도 나에게 내재된 '어떤 선'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돈을 좀 덜 쓰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혹시 양심의 모양 얘기를 아시는지? 양심은 처음엔 모서리가 뾰족해서 찔리면 따끔거리지만, 그게 자꾸 반복되면 둥그렇게 변해서 찔려도 아무렇지 않다는 얘기다. 내 소비도 지금 그 지경이다. 둥글다 못해 흐물해져서 내 소비는 어떤 걸림돌도 없이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내 손가락 아래서 경쾌하게 달칵거리는 키보드가 이를 증명한다. 부모는 기준이랄지 양심이랄지 하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자식은 그것을 무시하기 위해 평생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쇼핑몰에서 여름 원피스를 고르며 해보았다.




+ 전세로그 07.03

탈주달퐁. 달팽이들 영양제를 좀 맥일라고 네이버에 '달팽이 영양제'를 검색했는데 '달팽이로 만든' 영양제만 수두룩하게 떴다. 나와 동생은 오열했다.


미안해... 인간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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