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에게 도덕이란 무엇일까.
혁신의 아이콘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많은 도덕적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독선적이고 자기 생각만 강요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쟁이였다. 그런 그에게 이사회가 회사를 떠나도록 종용한 것이나, 그와 창고에서 같이 창업한 초기 창업 멤버들이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다. 성공을 위해 지인들을 배신하고, 자기 자신의 꿈을 위해 도덕을 버렸다고 했다.
오늘날 세계최고의 부자라는 빌 게이츠를 부러워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평생 기부를 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에게는 모두가 열광한다. 이 모순이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는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엄밀하게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사전적으로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규범"을 도덕이라 부른다. 무조건적인 '선(善)'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바람직"이라는 의미가 주관적이라는데서 평가가 갈리게 된다. "인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한자어인 "법인(法人)"은 법적인 인간이라는 뜻이다. 법률로 규정한 인간이며 살아있는 생물을 뜻한다. 영어인 "Company"역시 집단으로서의 동료나 친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법적인 인간인 회사가 지켜야 할 바람직한 도리란 무엇일까.
군주론에서 군주의 목표는 개인의 높은 도덕성의 성취가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기에 군주의 정치는 반드시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일반 백성들 역시 그들도 사람이기에 마음은 도덕적 이상을 품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그와 같지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너무 이상적인 상황과 이야기만 가정하며 정치하지 말고 현실적인 정치를 하자고 하였다.
프로야구팀의 목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최선의 경기를 펼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시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려 구단과 팬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때론 자유시간도 반납하며 지옥훈련을 하고 때론 엄하기로 유명한 코치진을 데려와 무식할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기도 한다. 야구팀의 목표는 소속 선수들 개인의 최대만족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성과로 창출하는 것이지 높은 연봉, 과도한 복지, 안락한 근무 환경 이런 것이 아니다.
즉, 경영자에게 도덕이란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자들에게 최대의 성과로 기여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구성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물론 성과창출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혁신은 늘 고정관념이라는 벽과 싸워야 하는 운명이다. 모두가 안된다고 말하는 한 복판에서 혼자 될 것이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본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지구는 돈다고 했던 코페르니쿠스, 팀원들이 수 년간 개발한 암호해독기를 누출시키지 않기 위해 팀원의 친형도 죽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앨런 튜링, 레코드 혁명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 시켰으나 잡스와 같은 예술가적 고집으로 결국 오케스트라에서 단원들에 의해 쫓겨나야했던 카랴안.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 혁신주의자들은 늘 주변의 비판에 시달렸고 평생을 고독과 외로움 속에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혁신은 도덕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일까?
이제 오늘날의 시대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가능하다고 본다. 과거는 소수의 천재가 자신의 주변을 설득해야만 하는 시대였다. 자신의 동조자가 주변에 있어야지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전 세계에 개인으로 존재하는 소수의 혁신가들도 인터넷을 통해 서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집단지성으로 서로 모이고 뭉치다보면 결국 합리적인 설득의 힘도 덩달아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혁신가가 되어야 겠다고 비난받는 삶을 살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스티브 잡스가 인류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지만 빌 게이츠 역시 미래를 당겨온 사람이고, 이름 없는 수많은 미생들의 삶이 오늘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부러 고난의 길을 걸을 필요도 없지만 "현명해질수록 외로워진다"는 격언을 되뇌이며 자신에게 닥쳐오는 숙명을 견뎌야 하는 것도 혁신가의 역할임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