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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Feb 04. 2019

내게 글쓰기는 명상이다

2019-02-04 샌프란시스코 아이다 플라자 호텔에서의 새벽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만은, 내가 비단 세계일주 여행가 출신의 출간작가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여행을 늘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여행 강의를 마칠 때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저는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저 같은 사람은 세계일주 같은 장기 여행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이 문제에 대해 나는 두가지 답을 내어 드린다.


첫째, 세계일주와 장기 여행을 동일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유럽 같은 곳은 국경들도 가깝고 복지도 잘 되어 있어서 1년에 한 달은 몰아서 휴가를 쓰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2~3주 정도는 쓸 수 있는 문화가 많이 생겼다. 그렇다면 그런 휴가 기간 동안 3~4개국을 한번 돌아보라. 그리고 그렇게 10년만 반복하면 30~40개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거창한 세계일주니 이런 것을 초월하여, 내 인생 그 자체가 삶이라는 이름의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첫번째 방법은 아쉽지만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두번째 방법은 노력하고 있다. 강남에서 거래처를 만나는 일이나 워크샵을 위해 지방의 연수원을 가는 것도 모두 일이 아니라 여행으로 만들려고 한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내 마음의 문제다. 


지난 2018년 11월에 인도네시아 발리에 출장을 다녀왔다. 그 세계적인 휴양지에 가서도 따로 놀 시간도 없이 계획된 워크샵만 진행하고 바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경험이 일에 매몰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정이 모두 끝난 밤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 골목을 걸으며 현지의 문화를 구경하며 보냈다. 그곳에서 만난 멘티와 함께 귀국행 밤 비행기를 타기 전 오후 짬을 내어 해변가를 산책도 하고 마사지도 같이 받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순간마다 여행의 순간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이번 출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2011년 세계일주때는 발이라도 딛고 가고 싶어서 억지로 하룻밤을 트랜짓하며 들렸던 곳인데 무일푼 백수 여행가였던 나는 그간 많이 성장해서 이번에는 구글에서 진행하는 Google Higher Education Academy에 교육생으로 초청받아 Google Sanfrancisco Office에 가게 되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에다 어렵게 선발 된 것이라, 설 명절과 겹친 일정이었지만 무리해서 오기로 결심했다. 


매년 나의 새해는 늦게 시작한다. 관공서와 일을 많이 하는 특성상 12월31일까지 연말 소진용 예산 사업을 다 마무리하고 1월은 사후 정산 및 후속 조치를 하느라 분주하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집이 이사를 하면서 거의 한달 정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일에 신경을 많이 못 쓰기도 했다. 그렇게 2월이 됐고 출장을 왔고 이 출장이 마쳐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느낌이 올 것이다.

다들 연말이면 하는 신년 계획도 제대로 구체화 시키지 못했다. 내겐 이번 출장이 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구글에서의 일정은 단 이틀이지만 열흘간의 넉넉한 시간을 잡아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귀국하기로 하였다. 그간의 내 경험에 비추어봐서도 여행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늘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 영감과 창의성을 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말까지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밤 비행기에 탔다. 여행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밤에 이동하는 것이다. 낮에 이동하면 그 자체로 하루를 소비하는 것이고 별도의 숙박비가 추가되면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이동하는 일정이 있는데 밤11시에 출발하여 오전7시에 도착하는 Overnight Bus를 예매했다. 편히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서 쉬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도, 예산도 없기도 하지만 왠지 아직은 남아있는 여행자의 야성이 이런 결정을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귀국행 비행기 역시 밤11시 막차다.


밤 비행기를 탔지만 그렇다고 잠을 자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이번에는 장거리 이동을 염두에 두고 전자책에 읽을거리를 잔뜩 담아서 왔는데 막상 읽으니 재미 있지가 않았다. 그간 너무 경영서나 에세이를 위주로 편식하여 이번엔 작정하고 문학작품을 좀 읽으려 챙겼는데 내 눈높이가 높아진 것일까 유명한 작품이라지만 너무 지루했다. 몇 시간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그냥 영화 몇 편 보니 금방 도착했다. 막판에 한 시간 반 정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창 밖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다 위를 낮게 나는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눈앞에 손에 잡힐듯 가까이 무지개가 쫓아오는 신비한 장면도 경험했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면 땅의 느낌과 하늘의 공기가 다르다. 사람 사는 곳이 달라야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천천히 환경을 음미하면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입국했다. 사람들은 많았고 공항을 나오는데만 두시간이 걸렸다. Tech의 도시이자 전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서비스 품질과 UX는 한국에도 한참 부족했다. 고속열차는 역사가 오래되서 그렇겠지만 너무 올드했고 도시는 지저분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다. 아마 전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일 것이다. 이번에 숙소를 예약하면서도 새삼 느꼈다. 8~10인실 도미토리가 하루밤에 5만원 정도 했다. LA 같은 대도시에서도 같은 비용으로 2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개인 돈으로 온 출장인데다 체류기간이 길어서 최소20만원대가 넘는 숙박비를 모두 지불하기에는 부담이 커서 이번 출장에서는 호스텔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낮에는 밖에서 있고 잠만 자는 목적이니 크게 불편할 건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다만 처음 3일은 방에서 업무 할 것이 있어 호텔방을 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 간만에 익숙한 솜씨로 시내의 숙소를 꼼꼼히 찾아보았다.



내가 고른 곳은 Civic Center 인근에 있는 AIDA Plaza Hotel이란 곳이다. 입지와 가성비로 골랐다. 시내에 있어서 왠만한 곳은 30분 이내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고, 낡고 오래되었지만 안락한 시설에 가격도 6만원대 정도로 저렴하여 이 근방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숙소였다.

건물은 클래식 했지만 전반적으로 낡았고 체크인만 20분 이상 걸릴 정도로 서비스도 정돈이 안되어 있었다. 나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카운터의 직원으로 있었지만 친절하게 키를 받아 방에 짐을 풀었다.


이 곳은 무려 1912년에 설립된 곳이다. 뉴욕도 그러하지만 미국에서 Tech한 곳은 일부 상업 지대이고 대부분은 굉장히 클래식하다. 단순히 싼 곳을 찾았다기 보다는 100년 이상 된 유래가 있는 곳에서 머문다는 것이 여행의 기분을 한 껏 살려주었다.


방은 아늑했다. 당연히 좁고 오래됐다. 공용 욕실과 공용 화장실이 있고 편의 시설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찾으며 여행한 적은 없기에 개의치 않고 짐을 풀렀다. Trip Advisor나 Hotels.com 등의 리뷰를 보면 부정적인 리뷰도 많은 곳이다.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만족한 마음으로 들어왔다.


혼자 짱박히기 좋아하는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근처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고 옆 CVS약국에서 물과 마실 것을 사고 들어오니 저녁 8시 정도 되었다. 간단히 일정을 정리하고 집에 전화 걸고 그러다보니 9시가 되었는데 잠을 못자서 그런지 졸음을 이기지 못해 일찍 잠이 들었다. 잠자리는 쾌적했다.



개운한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 새벽 세시였다. 아마 시차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빗소리는 선명했다. 오늘은 시티투어를 해볼까 했는데 비가 오는 것을 깨닫고 일정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빗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평소 컴퓨터로 작업을 할 때 유튜브로 빗소리를 틀어놓을 정도로 비를 좋아하는 나다. 타지에서 눈을 뜬 첫 새벽에 들려오는 소리가 빗소리라니 뭔가 센티멘탈 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짧게 명상을 했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까 하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뭔가 좋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늘 하고 싶었지만 항상 실패했던 것이 새벽형 인간이 되는 것이다. 마침 오늘자 네이버 뉴스를 보니 기상 패턴은 유전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거의 야행성으로 지내는 나는 늘 새벽형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번번히 안되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걸 억지로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는 시차 때문에 내가 원하던 모습이 이루어졌다. 밤 아홉시에 취침하고 새벽 세시에 빗소리와 함께 깨어났다. 명상도 하고 게으름도 피다가 일어나서 스탠드 불빛 하나 켜 놓고 빗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적막 속에서 조용히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야말로 완전한 아침이다.

매일 9~18시까지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는 귀가하여 휴식과 미래 계획을 세우는 스케줄을 짰는데, 이 역시 내가 늘 기대하던 삶이었다. 나는 늘 밤과 새벽까지 일을 끌고 오는게 문제다. 여기서 새벽에 일어나 저녁 6시까지 일을 마치고 저녁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생활, 이는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라이프 패턴을 잘 유지하면서 한국에 돌아가서도 꼭 유지하고 싶다.



벌써 아침 5시 반이 되어 간다. 처음엔 빗소리만 들리다가 이제는 빗자루 청소하는 소리도 창 밖에서 들린다. 햇빛은 오지 않겠지만 아까 하지 못했던 아침 운동을 하고 하루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올해와 내 삶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찾고 점검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새삼 생각했다. 나는 역시 작가가 되어야 하는 운명인가 하고.

내가 컨설팅을 할 때, 절반은 칭찬하고 절반은 불만족하는 것 같다.

내가 강의를 할 때, 대부분은 칭찬하지만 실망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쓸 때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과 찬사를 남긴다.

심지어 강의나 컨설팅을 의뢰하는 분들도 의뢰하는 이유가 "평소에 최대표님의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가 대부분이다. 피드백만 놓고 보았을 때, 나의 가장 특징적인 강점은 글을 쓰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또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도 욕심이 있으니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긴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글을 차분히 남기며, 글을 쓰는 것 그 자체가 내겐 명상의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올 한 해는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쓰는 삶을 위해 도전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을 깨닫고 결심한 것 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큰 수확 하나는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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