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석 Jun 22. 2017

#1. 한국을 떠나며

세계일주를 꿈꾸는 당신에게 


1
"갈비라도 사줘야 되는데 짬뽕 한그릇밖에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모든 인사를 다 마치고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갖은 식사는 짬뽕 한 그릇 이었다.

지난 몇 주간의 시간동안 나는 여행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사를 나누고 환송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 정신없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갖는 마지막 식사였다. 나는 그 많은 주변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몇 사람에게는 차마 인사의 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이번의 인사가 정말 마지막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외국에 나간다고 한 그 순간부터 아버지는 노래처럼 '귀국할 생각으로 나갈 거라면 아예 나가지를 말아라. 나가서 직장도 구하고 현지 여자와 결혼도 하고 자수성가를 이룰 생각으로 나가거라'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이면에 이 한국사회에서 마이너로서 평생을 겪은 아버지의 주름을 알기에 그 말 조차 이해할 수 있었다.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돈에 밀리고, 학벌에 밀리고, 인맥에 밀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이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어두움의 단면을 다 몸으로 부딛히며 사신 분이시기에 이 사회에 대한 그의 불만과 나만은 이런 세상을 벗어나 살라는 호소에 가까운 지시의 저의를 나는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다. 그 뒤에서 앉아계시는 구순을 바라보시는 할머니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에 진지한 인사조차도 드리기가 어려웠다. 좀 있으면 열살이 되는 강아지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다른 많은 이별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진지하게 가슴 속에서 이별의 비통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남들처럼 부양가족을 위해 내 삶을 헌신해야 함에도 그것을 저버리고 자신을 위해 현실을 포기하는 나의 모습은 지극히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마저 가족들이 짊어질망정 더이상 가난과 불행의 굴레를 벗어나라는 아버지의 지시는 나의 발걸음을 여행의 발걸음이 아닌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2
그렇게 많은 환송모임을 갖고도 출국전날인 화요일밤의 모임은 색다른 행복을 주었고, 그것이 마치고 예기치 않은 고향친구들과의 만남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출국은 아침 8시 비행기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속시간을 고려하여 5시반에는 출발을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새벽 1시를 넘기자 나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밤을 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였다. 친구들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귀가하고 나는 홍대앞에 홀로 남았다. 지하철도 끊기고 기다릴 곳도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나는 첫 노숙을 경험해보기로 결심했다. 

장기간의 여행을 계획하는 나에게 예산의 효율적인 배분은 필요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여행비용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숙박비를 커버하기 위해 나는 애초에 해외에서 대부분의 숙식을 노숙으로 해결하기로 결정을 한 상태였다. 과거 대기시간이 길어질 때 공항에서 쪽잠을 청한 경험은 있지만 그야말로 노숙인들과 같이 행동하는 삶을 결심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미 내린 결심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법, 나는 인천공항까지 가는 공항철도를 타기위해 홍대입구역으로 갔으나 청소때문에 입구를 봉쇄하여 역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5번 출구앞에 있는 은행건물 입구 계단에 몸을 뉘었다. 내몸의 절반 크기만한 배낭은 좋은 버팀목이 되어 코너에 기대놓고 나는 그대로 드러누워 노숙을 경험해 보았다.

그 전날에도 잠을 푹 못자서 너무나 피곤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했으나 신경쓰이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쉬지않고 지나가는 취객들 조차도 신경쓰였으나 그것을 무시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경찰 순찰차가 지나가기도 하고 환경미화원들이 지나가기도 하였으나 이것도 무감각해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들 역시 나를 신경쓰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나를 괴롭게 한 것은 벌레들이었다. 야외인데다 옆에 하수구 배수로가 있어서 그런지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자꾸 몸을 괴롭히는 것이다. 거기다 나 자신과의 싸움도 힘들었다. 발뻗고 누운 것도 아니고 대리석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는 자세이다 보니 허리나 엉덩이가 한 자세로 있기에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엎치락 뒤치락 하며 힘들어했다. 날씨가 습해서 상의는 젖어있었고 모자는 이미 벗은 지 오래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를 일어서게 한 것은 날씨였다. 습한 대기가 비로 변하여 내 머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몇 방울 비를 맞는 동안 많은 생각이 지나갔고 이내 일어나서 역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4시 40분이었다. 다행히 청소를 마쳤는지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 텅빈 공항철도 승강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배낭을 맨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모습인 양 무거운 발걸음을 힘겹게 떼고 있었고 이제 곧 새로운 태양이 뜰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다. 꽤 멀리 걸어가다가 화장실에 들렸다. 그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세면백을 꺼내 씻기 시작했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했다. 
 

물기를 닦은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도 발랐다. 잠은 깨었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노숙생활에 적응해버린 내 자신이 놀랍기도 하였다. 플랫폼에서 20분정도 시간이 남았을 때 노트북을 충전하기 위해 플러그를 꼽아 전화기와 같이 충전을 시켰다. 그 와중에 이 글의 일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새벽은 그렇게 빨리 지나가고 나는 공항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에 내린 부슬비는 그쳤고 서해가 보이는 공항철도의 차창밖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사표 : 젊음의 최전선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