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이야기 #0. 출사표
“와아-“. 내 20대의 마지막 겨울, 나보다 스무살 이상은 많은 대학원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나의 당돌한 인사말은 모두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나의 20대를 마무리하는 이 자리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봤을 때, 나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하고, 다시 1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이렇게 다시 살 자신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난 열심히 살았다”는 다소 건방진 자신감에 넘치는 말을 감히 하였다.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세상을 모두 가질 것만 같았던 패기와 자신감, 그리고 주변의 넘치는 격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시기였다. 나는 10대때 꾸었던 장래희망을 이미 20대 중반의 나이에 실현한 상태였고, 많은 학교 기관에서 최우수로 학업을 마쳤고, 매우 우수한 성과를 내고 6년간의 직장생활을 막 마치고 그 누구보다 화려하다고 자부하는 이력과 경력을 자랑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이후 나의 자취는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실망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제일 처음 나는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 명문대의 어느 세계적인 석학으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하였으나 스스로의 결심으로 막판에 유학을 포기하였다. 뒤이어 이직을 결심하고 취업시장에 나가보았지만 기업과 나의 기대치가 서로 맞지 않아 오랜 방황 끝에 구직활동도 포기하였다. 이 후 나는 사업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나는 너무 가진 것이 부족했고 사회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시간은 내가 퇴직을 한지 1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보냄을 자랑스럽게 여긴 20대를 마치고 내가 준비하던 모든 일을 연달아 실패하며 백수로 지낸 시간이 자그마치 1년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 어떤 외부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던 나에게 내면의 고통은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늪과도 같았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인생에서 여행이 필요한 순간’이 운명처럼 찾아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이유는 대부분 비슷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견문을 넓히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돌아보기 위해’ 등의 이유들이 나에게 예외가 되진 않겠지만 그런 똑 같은 이유로 나의 결심을 출사하기에는 더 큰 목표와 결심이 필요했다. 항상 일생의 중요한 결심이 필요한 순간마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움에 도전하곤 했다. 이번 결심도 나에겐 많은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우선 나는 올해로 정상적인 구직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의 커트라인에 섰는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이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앞으로의 나의 인생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길을 걷지 않겠다는 선언적 결심과도 같은데 그것은 내가 의도한 바와도 다르지 않아 후회할 것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많은 금전적 기회비용을 포기했다. 기업체에 재직 중인 또래 친구들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나마 얼마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나의 모든 돈을 나는 이번 여행의 길을 위해 모두 꺼내놓았다. 이 역시 앞으로의 나의 삶도 재물에 욕심을 버리고 청빈하고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의 반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결심을 통해 나는 안정적인 삶을 포기해야 하였다. 당연히 구직을 못하였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도 없고,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 결혼도 매우 늦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이룬다거나, 사업을 하는 등의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앞으로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도전적인 삶’이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의 가치보다 더 나에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백수생활이 지속되면서 나의 자존감은 수직낙하 하였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원룸방 쇼파에 기대 누워 음악이나 들으며 살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멋진 후배들도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선배님, 선생님들을 주로 만나 나의 이런 고민을 말하고 인생의 조언을 구했다. 다들 많은 좋은 말씀들을 주셨었지만 ‘만약 제 입장으로 선생님께서 다시 돌아오신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놀랄 정도로 똑 같은 답변을 주셨었다. 그것은 의외였지만 충분히 존중할 만한 답변이었다. 나 역시 그 조언을 이미 취업과 창업 이전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모든 계획이 좌절된 직후 그들의 격려에 고무되어 이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을 준비하기에 이렇게 거창한 출사표까지 쓰게 되었는가. 세상에 여행 한 번 가보지 않는 사람도 없는 판에 말이다. 행위의 목적은 행위자가 부여하는 법. 나는 이 여행을 내 인생의 다시 올 수 없는 중대한 기회와 결심으로 여기기로 하였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내린 결심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긴 여행을 떠날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들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한 나를 주위에서 더욱 격려해주시는 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곧 세계일주를 떠날 것이다. 북경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동유럽으로 갈 것이다. 육로로 모든 동유럽 국가와 서유럽 국가를 걷고 아프리카를 거쳐 중동과 인도, 동남아시아로 계속해서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일정이 약 1년이고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들어와 재정비 후 다시 태평양을 건널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일정은 실로 현실적이고 도전적이다.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원했다면 난 굳이 이러한 결심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침 가진 돈도 없기에 나의 숙소는 항상 자연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몽골의 대평원을 침대 삼고 눈부신 유성우를 이불로 삼아 잠을 청할 것이다. 대영박물관이나 베네치아는 가지 않지만 네팔의 히말라야와 티벳의 고원, 사하라 사막에서는 한 달 이상씩 머무를 예정이다. 중간중간 현지에서 생활비를 조달하며 생계를 유지할 것이다.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의 생선가게에서 박스를 나르고, 요르단에서 양을 치고, 인도에서 녹차 잎을 따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가슴이 설레 인다. 다행히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이 중간중간 먹여주고 재워주기도 하면서 나를 도와준다니 두려울 것도 없다. 더욱이 특수부대에서 생존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던 나에게 산에서 텐트치고 지내는 생활은 익숙을 넘어 편안함을 느낄 정도이니 어쩌면 지금 서울의 생활보다 그런 오지의 삶이 나에겐 더 적합할런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드넓은 하늘과 광활한 대지,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과 마주하면 그들이 내게 던져 줄 인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철저하게 자연의 편에 선 채 걸어야만 한다. 따뜻한 호텔의 샤워장과 침대, 라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 이런 것들이 나를 편안하고 흥미롭게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만, 생존을 투쟁하는 법을 배우려는 나에겐 여전한 사치이다. 그런 점에서 애초에 돈이 없이 나가는 나의 상황은 오히려 기회이기도 하다. 가진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고, 잃은 것이 없기에 두려울 것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즉 전 세계라는 대지와 내가 물아일체가 되고 세계인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개인적인 목표를 세웠다. 첫째, 관광지가 아닌 오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할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유적지가 대부분 역사적 현장이라 그곳을 간과하지는 않겠지만 해외에서 여행자들과 부대끼는 시간보다 이름 없는 마을의 골목에서 구걸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둘째로, 최대한 검소한 여행을 할 것이고 해야만 한다. 사실상 나의 경비는 교통비를 제외하고는 몇 개월 치 식비가 전부이다. 마침 위의 첫 번째 목적과도 연관되어 있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숙식은 노숙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도심지의 경우 기차역에서, 시골 마을의 경우 산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것이다. 실제 여행경비에서 숙박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많은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다행히 세계 각지에 있는 친구들의 호의로 몇몇 국가에서 숙식을 지원해준다는 친구들이 있는 점은 매우 다행이다. 세 번째로, 여행 간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을 찾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활동에 연락을 취하였다. 아프리카에서의 난민지원봉사, 인도에서 자원봉사활동, 헝가리에서 교육지원활동, 그리고 생계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몇몇 한인교회에서 반주 등으로 봉사를 하고 짧은 숙식을 지원받기로 한 곳도 있다. 이러한 가치 있는 활동들을 통해 세상에 속해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여행의 결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 보름도 채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 세상을 향해 비상하는 꿈을 꾼다. 나는 비록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가지도 못했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지도 못했고, 넉넉하게 돈을 가져본 적도 이제껏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이제 나를 부러워하고 격려해준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세계여행’이라는 꿈은 들어있다. 그러나 다들 현실의 제약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나는 그들의 기대를 안고 그들의 꿈을 대리만족 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유를 향해 떠나는 여행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인생의 황금기에 서있는 나의 현실을 모두 내려놓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기대와 응원을 안고 꿈의 발걸음을 딛는데 이 것이 행여나 공허한 움직임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 일년의 시간을 후회한 것과 같이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시간과 돈을 낭비한 것을 또다시 후회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나’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희망’을 이 세계에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자임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눠주고 다시 받는 감동과 희열을 돌려주는 역할도 감당할 것이다. 이러한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가 돌아왔을 때 과연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 모습을 조용히 그려보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여 온다. 젊음의 최전선에서 삶과 투쟁하는 발걸음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