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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Feb 12. 2019

혼자하는 여행은 명상과 무척 닮아 있다

여행은 주어진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환기하는 과정이다.


'나'라는 캐비넷이 있다고 치자. 우리는 매일 그 캐비넷에 무수한 서류뭉치들을 집어 넣는다. 최대한 많이 넣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인양 꼬깃꼬깃 구겨서 넣는다. 억지로 넣을 수는 있지만 나중에 필요한 문서를 다시 꺼낼때는 어떤 자료가 어디에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매일을 바쁘게 살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과 삶의 경험을 반추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삶이다.  

그래서 가끔은 자료를 구겨넣는 일을 멈추고 그동안 쑤셔넣은 것들을 모두 꺼내 곱게 펴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필요에 따라 분류하고 찾기 쉽게 해놓으면 다음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쉽게 되기 때문이다.


여행의 역할이 이것이다.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내일은 또 주어진 일만 정신없이 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휴식을 주고 몸과 마음의 재활을 도우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는 것. 가서도 일만 하는 출장이나 정신없이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다니는 관광과는 또 다르다. 시간적 공간이 있어야 여행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그 시간의 공간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바로 생각과 영감이다. 스스로에게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영감을 통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나에겐 예술이 좋은 도구다. 그래서 어떤 여행을 오더라도 반드시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다음은 사람이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경험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인사이트를 배운다. 마지막으론 고독이다. 상념의 진공상태를 만들어 오롯이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래서 혼자하는 여행은 명상과 무척 닮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대여섯군데의 미술관을 들르고 LA로 넘어왔다. 일정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고나니 할 일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작품을 보는 것 둘로 정리된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원래 사업가가 아니라 예술가였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이처럼 아름다운 예술을 사업으로 만드는 일, 사업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만드는 일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죽을 때 '나'라는 작품이 하나의 예술처럼 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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