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과 실력이 많은 강사일수록 PPT를 안쓰는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슬라이드를 쓰게 되면 교육의 주체가 강사가 아닌 슬라이드가 되게 된다. 강사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며 주위를 환기하려 하지만 교육생들의 눈은 본능적으로 슬라이드의 내용을 보게 된다.
둘째, 슬라이드 중심의 교육은 흐름과 현장의 맥락과 무관하게 일관되고 정해진 순서로만 진행이 된다. 그래서 교육생들과의 상호활동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반응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 실력 있는 강사님들은 애초에 슬라이드를 보조적인 장치로만 사용하고 강사의 퍼실리테이션을 중심으로 학습자가 주체가 되도록 강의를 설계한다.
가장 대표적인 소도구로 포스트잇을 꼽을 수 있는데, 아직은 직접 적극적으로 교육생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흔하지 않은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말하는 것' 대신 '써보는 것'이라도 직접 해보는 것은 큰 시도다. 그래서 이제는 포스트잇에 의견을 적어 붙이는 것 자체가 전통적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일방향적 세미나형에 비해서는 훨씬 더 참여적인 방식이다.
내가 경험한 최고 수준의 교육은 슬라이드는 물론 커리큘럼과 어떠한 교구도 없이 그냥 동그랗게 둘어 앉아 진행한 어느 세션이었다. 이를 위해선 교육자뿐 아니라 교육생도 상당한 수준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전체적인 교육의 목표와 흐름은 가지고 있으되 순간순간의 감정과 반응에 맞춰 sync 하는 형태다.
주어진 슬라이드만 순서대로 읽는 형태의 교육과 비교하여 보면 이는 완전한 신세계며 경험적 충격이다. 이런 교육의 즉흥성(Improvisation)이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해당 교육 주제에 숙련도가 낮은 단계의 교육생에게는 정보전달형 교육이 효율적이지만, 어느 정도의 훈련이 된 상태의 교육생들에게는 자유롭고 안전한 실험실을 만들어 주고 스스로 배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이것이 PBL과 액션러닝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고, 육군훈련소와 재즈밴드의 차이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