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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May 08. 2020

글의 감옥, 꿈의 감옥

나를 위한 글쓰기

지금은 너무나 흔한 말이 되어버린 '꿈'.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찾았다.

오늘은 그 꿈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의 꿈은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생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세운 구체적인 목표는 최대 10년, 빠르면 5년 안에 은퇴준비를 마치고-적어도 꼬마빌딩 하나 정도는 준비해놓고- 돈 걱정 없이 글쓰고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는 것이 최근 몇 년간 그리고 있는 나의 꿈이다.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한 것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만드는 것까지 완성시키기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어려서부터 잘 하는 일은 이것이었다.

나는 아기때 말을 일찍 떼었다고 한다. 특별히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세살 무렵부터 혼자서 말을 배워 했다고 한다. 유치원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일찍 가장 어린 나이로 입학했지만 가장 말을 잘 한다고 해서 졸업식때 사회를 맡아서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A4용지로 3~4장 정도 되는 대본을 6살 아이가 실수 없이 줄줄 외워서 했다. 아마 언어적 능력이 좋았나보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거실 벽에 붙여둔 천자문 브로마이드를 줄줄 읊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 모습을 구경하려고 일부러 집에 찾아오시는 경우도 잦았다. 그 시절엔 수재 소리도 들었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나는 학업에 흥미를 완전히 잃고 중고교 6년간은 칠흑같은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이룬 유일한 성취는 백일장에서 입상을 한 것이었다.

만약 내 지인의 자녀가 이런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주저없이 체계적인 진로설계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집안 환경과 형편이 그런 것까지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여러 관심사를 전전했는데 이건 나의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무엇을 할 지 몰라서였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경찰이 되고 싶기도 했다가 목회자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음악가가 되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학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다 적어도 몇 년씩은 투자한 일들이었다. 직업군인으로 특공부대 소대장도 해보고 정치인의 수행비서도 해봤다. 경양식집에서 서빙도 해보고 광고회사에서 AP도 해보고 돌고 돌아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와서 컨설턴트도 하고 교육사업도 해보고 이것저것 돌아 여기까지 왔다.

이제와서 느끼는건 내가 작가가 된다면 정말 글의 재료들은 많겠구나 하는 것이다.




내가 컨설팅을 하면 절반은 잘한다고 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수고하셨다고 했다.

내가 강의를 하면 삼분의 이는 아주 좋았다고 했지만 나머지 삼분의 일은 그냥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에는 다들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는 사업자이고 교육자인데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시는 분들의 첫 인사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였다. 인정과 칭찬은 나무에 쏟아지는 햇살과 같다. 그 방향으로 머리를 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글에 소질이 있나라는 생각이 싹을 틔웠다. 그러자 어린 시절부터 내가 인정받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에 덮어져 나도 잊고 살던 것 말이다.


그래서 거창하지 않게 소셜 미디어 글쓰기 부터 하자고 결심했다.

글쓰기는 습관이 중요한데 매일 페이스북에 글 하나씩은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고 보니 12년이 지났다. 그 초창기에 쓴 글과 지금 쓴 타임라인의 글을 보면 성장했던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만 모아서 책을 내보자는 출판사도 있었다.


칭찬은 많이 들었지만 아마추어의 영역이었다.

그 사이 전문서도 출간해보고 에세이도 내봤다. 글쓰기 강사로 글쓰기 책도 내보고 글쓰기 전문 회사도 공동 창업 해봤다. 그래도 제도권 영역에서 검증 받았다고 말하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한번 공모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과연 나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어느 수준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표로 한 공모전의 공고가 뜨고 우선 내가 한 일은 출간된 과거 당선작들을 단행본으로 구해서 읽어보는 것이었다.

정말 손을 떨며 읽었다. 아,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영역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공모전을 포기했다. 스스로의 부족함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마치 글의 감옥 속에 갇힌 것 같은 마음이었다.

이 과정을 사람들은 슬럼프라고 하였다. 시작도 하기 전에 슬럼프라니.

5년 후에 건물주가 되는 건 손에 잡히는 목표처럼 보이는데, 정작 작은 공모전 하나 입상하여 등단하는 것은 아지랑이처럼 잡히지 않는 신기루인양 너무나 먼 곳으로 보인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글을 쓰는데 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글쓰기 연습을 시작하였다.

글쓰기는 내게 명상이다.

마음을 수양하듯 글을 쓰다보면 결국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다른 분야에서 내가 이루었던 성취처럼 이것도 성공의 공식은 있을 거라 확신한다.

내 서재 책꽃이의 한 줄을 가득 채운 글쓰기 책들을 마주하며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이 순간 나는 꿈의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나가기 싫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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