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솟구치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침에 떠오르는 여명을 보면 가슴이 뛴다.
어둠이 빛으로 바뀌며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비단 나 뿐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태양신을 섬기고 그 이전의 고대 시대에도 인류 문명이 태양을 따라 발전한 것은 태양이 주는 그 에너지와 힘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우연치 않게 태양과 적절한 거리를 가지고 있는 골디락스존에 위치해 있어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고, 그 적절한 온도와 열 에너지를 통해 미생물이 번성하고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은 길고 긴 밤 같지만 봄이 오면 다시 생명이 솟아 오른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내가 문명 이전의 사람이라도 이런 태양의 힘을 보면 그것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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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른살 무렵 백수생활을 일년 정도 한 적이 있다. 나는 완전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었다. 도저히 밤에는 잠이 오질 않고 해가 뜰 시간이 되서 억지로 잠에 들면 다시 해가 질 시간에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깨어있어도 깨어있지 않은 것 같은 생활이 나를 괴롭혔다. 가뜩이나 반지하 원룸에 살고 있어서 햇살도 들지 않는데 깨어있는 시간도 오밤중이라 나는 햇볕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햇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이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 피폐한 삶을 전환시키는 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가 터닝포인트였다.
어느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잠을 줄이고 어느날 새벽에 밖으로 나갔다. 당시 나는 신논현에 살고 있었는데 새벽 5시에 그 앞에 있는 영동시장에 한번 나가보았다. 세상에, 그곳은 이미 하루의 한복판이었다. 트럭에서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이 식자재 박스를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르고 있었고 상인들은 상품을 진열하느라 그 겨울의 추위 조차 잊은듯한 모습으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아침해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모습은 내가 평생을 잊지 못하는 광경이었다.
전통시장의 복도 사이로 빛이 스며들더니 일하는 사람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배달원 이마의 땀송이, 가판에 놓여있는 바구니, 먼지가 닦여진 의자들 여기에 어둠이 가시고 빛이 들며 생명이 채워지는 이미지였다. 아마 신이 강림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어서 논현, 신사, 한강까지 걸었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들 회사에 출근하려고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그 와중에도 뭘 하겠다고 책을 읽거나 뭔가 보면서 가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서 그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평소에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나의 나태함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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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윽고 백수생활을 청산했다. 취직을 한 것은 아니었고 이런 현실에서 탈출해야 했다고 결심했다. 우선 가진 것을 다 팔았다. 20대 내내 일하면서 샀던 유일한 자산이었던 승용차도 팔고, 아끼는 악기들도 다 팔았다. 거기에 몇 푼 남지 않은 원룸 보증금까지 들고 나는 한국을 떠났다. 내 인생의 세계일주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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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중간지점이었던 그리스에서 이태리를 넘어가던 때의 일이었다.
애초에 돈이 없기도 하였지만 나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서 여객선을 탔다.
내가 기대했던 특별한 경험이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라는 지중해를 건너면서 그 한복판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항공권도 많이 비싸지 않았고 이틀이라는 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 백수 시절의 경험이 생각이 나서 그랬을까. 그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다시금 그때와 같은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하는 생각에서였다. 영동시장에서 보았던 그 태양이 나의 백수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면 이 여행 중에서 만나는 태양은 나의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었다.
전날 배에서 만났던 여행자 친구들은 저녁이 되자 춥다고 실내로 들어갔지만 나는 갑판에서 자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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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찬 파도의 소리에도 곤히 잠들었던 나를 깨운 것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었다. 나와 같이 지중해의 아침을 맛보고자 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이른 새벽에도 갑판에 나와 있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렇게나 기대하던 여명이 밝아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졸린 눈을 비빌 새도 없이 나는 갑판 끝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차라리 내가 시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몇 자 글로 기록할 수 있을까. 저 멀리서 검푸른 빛이 밀려오더니 이내 주황색, 보라색, 파란색 빛들이 물감 섞이듯 수평선에서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를 뚫고 새빨간 태양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아, 나는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이 길을 달려왔고 여기서 잠을 청했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흔들리는 배의 엔진소리가 바닥에서 부터 전해왔고 파도의 울림과 바다의 소리도 귀로 들어와 온 몸을 감쌌다. 조용히 눈을 감으면 짜고 무거운 바다 바람이 얼굴이 때렸지만, 눈을 뜨면 형용할 수 없는 영롱함이 나를 압도했다.
나는 그 순간을 정확히 글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사진기록을 남기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느꼈던 그 비장함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산다면 나의 삶도 저 태양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리라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