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이사를 할 일이 있었다. 두 군데의 다른 곳에 있는 짐을 하나의 큰 새 집으로 옮기는 일이라 번잡스럽지만 같은 날 두 군데의 업체를 불러서 이사를 진행했다.
짐이 좀 많은 곳은 그냥 전통적인 포장 이사 업체를 전화해서 불렀고, 짐이 적은 곳은 당시 원룸이사 스타트업이었던 모 회사에 모바일로 신청을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포장 이사 업체는 아침 7시에 50대 장년 아저씨 3명과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다 싣고 청소까지 하고 자기들끼리 아침식사도 한 뒤 모든 짐을 다 내리고 정리하고 청소까지 하는데 3시간 반만에 끝냈다. 그런데 이사 스타트업은 그날 저녁까지 총 9시간이 걸렸다. 식사시간이 포함되었기는 하지만 해가 다 지고 난 뒤의 밤까지 진행했다.
포장 이사 업체는 별 서비스라는 것도 없었다. 그냥 문 열자마자 무지막지하게 짐들을 포장하고 기계처럼 옮기는데, 다만 그 프로세스와 협업 구조가 마치 하나의 제조 라인을 보는 것 같았다. 고객으로서 나는 별로 손을 쓸 것이 없었다.
스타트업은 우선 예약도 모바일로 하고, 서비스가 친절했다. 와서 기념품도 주었고 회사 로고가 인쇄된 종이 박스에 담았다. 다 좋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비용도 포장이사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경험 가치를 위해서다.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식을 먹을때, 사람이 만든 것과 로봇이 만든 것의 과정을 보고 판단할까? 그 과정이 어떻든 우리는 결국 음식 그 자체를 보고 결정한다. 과정은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판단한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나 조직 문화를 보고 상품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나 자신의 이익도 포기하고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고객은 자신이 얻게 되는 최종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구매를 고려하며, 사업 기획자는 이 점을 고려하여 비즈니스를 설계해야 한다.
청년 창업자들을 만나면 가치나 열정, 신념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요소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더욱이 프로라면 더욱 그러하다. 학생이라면 과정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은 결과만을 본다. 청년 창업이라고 해서 어설픈 서비스에 용납할 소비자는 없다.
가끔 예쁜 포장지로 싼 서비스를 보면 그게 본질이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객에게 손편지를 쓴다거나, 서비스 프로세스를 규범화 한다거나, 마일리지를 적립한다던가 하는 활동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이 획득하는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이다.
내가 매일 시간을 쏟는 분야가 내 사업의 본원적 결과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수적인 업무를 위해서인지를 분석하면 좋다. 비즈니스 현장은 야생이며 전쟁터다. 나는 작은 동물이니 큰 동물에게 잡아먹지 말라고 부탁할 수 없다. 각자의 여건대로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