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석 Oct 30. 2020

독학 습관


스물아홉살땐가 있었던 일이다.


그때 직업군인으로 군대에 갇혀 있어서 너무 무료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나마 대학원을 다니면서 삶의 재미를 찾아가던 시절이었다. 사연은 좀 긴데 여튼 여차저차해서 내가 당시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뭔가 내 성향과도 잘 맞는 학문이었다. 철학과는 많은데 미학과는 서울대가 유일하여 이듬해에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에 한번 진학해보자는 생각에 일단 과사무실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아봤다.


비전공자에 좀 쌩뚱맞은 면담자였지만 조교님이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셨다. 심지어 과년도 입학시험 문제도 주시고, 입학시험 범위에 있는 책 리스트와 학과 커리큘럼 로드맵도 다 주셨다. 정말 진귀한 자료였다.


결론적으로는 여차저차해서 학교는 못갔는데 진짜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대학원에 입학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받아온 그 학과의 커리큘럼에 맞춰서 혼자 독학으로 대학원 페이스를 유지하며 공부를 했다. 1학년 1학기 3과목을 16주로 나눠서 교과서를 읽고, 2학기 과목도 마찬가지로 독학했다. 지금이야 이러닝이나 유튜브도 많고 그렇지만 교과서와 참고문헌을 읽으며 미학을 독학했던 그 시기가 그래도 전방 군부대의 말년을 지탱하게 해 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Qualified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서울대 미학과의 커리큘럼을 그 재학생들과 같은 페이스로 읽은 셈이다. (심지어 혼자 레포트도 썼다)


이걸 한번 해보니 그 다음에 공부할 일이 있을 때도 비슷한 스타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강사로 활동하면서 교육학 석사과정 커리큘럼을 죽 공부했고, 물류 스타트업을 할 때는 물류학이라는 전문 분야도 공부했었고(여기는 박사과정도 좀 다니다 말았다), 코칭을 공부할때는 심리학을 또 파고 들었다. 그래서 사회에선 인정해주지 않는 독학이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한 너댓개 정도의 석사과정에 준하는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게 융합이 되면서 오늘날 나의 역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


내년엔 또 뭘 공부할까 고민하는 걸 보면, 이게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