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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Nov 17. 2020

시장 크기(Market Size) 측정의 문제점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때 가장 현실과 맞지 않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언컨데 시장 크기(Market Size) 측정이다. 


왠만한 창업교육이나 책과는 반대의 주장인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로, 사업을 시작할 때 잠재 시장이 크다고 들어가고 작다고 들어가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되는 접근이다. 왜냐하면 사업 성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시장 내의 경쟁 강도(Level of competition)이기 때문이다. 10억짜리 시장이지만 경쟁자가 없는 완전 독점시장이라면 스타트업이 시작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아무리 큰 시장이어도 대체재가 많으면 성공할 수 없다. 회사의 역량과 리소스가 없는 상태에서 몇 조 단위 시장을 목표로 한다는건 말이 안된다. 그런 큰 시장도 쪼개고 쪼개서 가장 niche하고 경쟁자가 없는 fragment 부터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좋아하는 제로투원이나 블루오션전략 같은 책들이 하나 같이 하고 있는 이야기다.


둘째로, 시장의 크기는 정확히 측정하기도 어려우며 굳이 그렇게 측정할 필요도 없다. 통계자료가 존재하는 영역은 이미 대기업들이 들어와 있는 시장이며 경쟁자가 없거나 적은 시장은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해당 목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 방향성이 중요하지 얼마만큼 성장하고 있는지 그 스피드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다. 달리기를 예로 들면, 우리가 정해진 시간안에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있다고 하자. 그럼 일단 앞뒤 안보고 무조건 전력질주 해야 한다. 중장거리면 체력안배를 할 필요는 있겠으나 몇 미터 남았나를 계산하며 할 필요는 없고 방향과 거리의 어림 짐작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다. 새로 창업을 했는데 '우린 하루 8시간만 일해도 되겠어', '우린 10시간씩은 일해야 돼' 이런 업무량 측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사업 안해본 사람들의 사고다. 일단은 목적지와 방향 정해지면 닥치고 죽어라 달리는거다.


셋째, 시장의 크기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Customer Needs)와 같이 고려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이를 합치면 '고객의 니즈가 존재하는 시장의 크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마켓 사이즈를 측정할 때는 그 시장안의 고객 분석이 선행 및 병행되어야 하는데, 현 사업계획서 시스템 상에서는 이 둘을 구분해서 진행한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구통계학적 자료만 가지고 시장의 규모를 측정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초반의 여성중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몇 명인지 확인하는 것보다 그 중에 이 아이템을 돈을 주고 구매할 비율을 표본조사로라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처음에 판단한 시장 타겟 그대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사의 내부 상황과 경영 환경의 변화로 민첩하게 피보팅 해야 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숙명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테크 스타트업 중에 창업초기의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페이스북은 하버드생들의 네트워킹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소셜 미디어 광고 플랫폼이 되었고, 우버는 공유차량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교통수단을 넘어 sharing business의 모든 영역을 다 한다. 모텔 정보 공유 커뮤니티였던 야놀자는 이제 여가 플랫폼을 넘어 도시재생의 영역까지 가고 있고,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 역시 장사에서 시작해서 수십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도 시작부터 이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업전에 큰돈을 들여 마켓 리서치를 해봐야 그 이듬해에 사업모델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정교한 시장 분석보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환경에 민첩하게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인 Agility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럼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내가 볼 땐 세 가지 이유다.


1. 우리나라 고유의 교육문화에서 기인한 문제풀이식 해결방법 때문이다. 정부지원사업용 사업계획서 쓰는 것을 보면 대부분 시험지 푸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채점위원은 심사위원이고 가장 통과될만한 '정답'을 찾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시장규모나 재무계획같이 숫자로 이루어지는 것은 숫자로 정확하게 적어야 된다는 문화다. 또 그렇게 코칭하는 멘토들도 많다.


2. 관리쪽의 문제도 있는데, 담당자들이 상부에 보고를 하려면 뭔가 그럴싸한 체계적으로 분류된 지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TAM-SAM-SOM 같은, 괜히 해외에서 외국말로 된 그럴듯하지만 아무 쓸모 없는 지표 같은거 맹신하고 그런 느낌이다. 시장 크기가 불확실하면 뭔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라 정확한 분석을 하고 들어가야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겠지만 이는 전형적인 행정적 발상이다.


3. 프레임워크에 익숙한 문화다. 일단 몸으로 뛰고 시행착오를 수정해가며 부딪히는 것보다 컨설턴트처럼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따른 액션 플랜을 수행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투자회사나 컨설팅펌처럼 '분석'을 하는 곳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지만 '실행'이 중요한 스타트업은 분석이 우선이 아니다. 페르미 추정법이니 이런 그럴듯한 방법론으로 보고서 채우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실제 내 경험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으면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 하여 선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그리고 이게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 나오는 첫 번째 법칙인 "선도자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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