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전문적인 내용인데, 기업에서 OKR이 왜 안돌아가는지 한번 설명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MBO와 OKR을 vs.로 보는 시각부터가 잘못입니다. MBO의 개념을 처음 말한 것이 피터 드러커인데 테일러리즘에서 포디즘을 거쳐 세계대전간 컨베이어 대량 생산 체계를 보면서 노동의 도구화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1956년작 <경영의 실제>를 보면 인간은 목적과 자기 통제를 통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 and self-control)을 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 첫 글자를 따서 MBO가 만들어집니다.
이후 이 글을 읽은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가 큰 감동을 받은 뒤 우리도 이러한 관점의 성과관리를 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Intel의 MBO라는 의미의 i-MBO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OKR로 이름이 바뀝니다. 즉 MBO와 OKR은 뿌리도 같고 철학도 같고 지향점도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후에 존 도어가 설명한 OKR의 철학과 원칙 중에 피터 드러커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 기업들이 피터드러커가 말하는 방식과 반대로 MBO를 하고 있다는 것만이 문제입니다.
존 도어의 OKR이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로는 기법 자체의 탁월성이라기 보다는 성과관리 방법론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OKR을 간단히 말하자면 "성과관리를 더욱 애자일하게 하자"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늘날 MBO방식의 성과관리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하나만 뽑으라면 '애자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제조업과 대기업 기반의 경제에서는 MBO와 같이 대규모의 장기전략을 일사분란하게 관리하는 방법론이 통했던 시기였지만, IT기반의 빠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 경제에서는 보다 빠르게 관리해야 하는 방법론이 먹혔던 것이지요. 그래서 IT 붐이 불었던 90년대 중반 이후 OKR이 빠르게 확산되었던 데에도 이런 산업의 변화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현장에서 일을 해보니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이 OKR을 도입해서 성과가 늘어났다기 보다는, "성과관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과관리를 한 상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성과가 향상된 것이었습니다. 성과는 측정을 하면 반드시 개선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런 성과관리 시스템과 문화가 없기 때문에 OKR이 그 첫번째 시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당연히 개선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바로 효과가 나는 듯 하나 문화적으로 내재화하는데 대부분 실패합니다. 여기에 기술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대부분 인내를 가지지 못한 원인이 큽니다.
여튼, 스타트업에서 필독서처럼 읽는 존 도어의 OKR 책을 보면 이 사람이 아무리 투자업계의 전설이라고 해도 HR실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티가 납니다. 현업과 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OKR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헛점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OKR은 보상과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이런 것들 말이지요.
OKR이라는 제도 안에는 여러 빈 공간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 제가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첫째로, 회사라는 조직은 하나의 담대한 목표와 서너개의 핵심 지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존 MBO 시스템에서는 Mission-Vision-Core Value의 가치관에서 시작되어 Goal-CSF-성과행동-KPI-PI 등의 계층적인 목표를 설정합니다. 물론 저도 이건 좀 과도하다는 생각입니다만, 그렇다고 O와 KR로만 나누는 것은 너무 생략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간극을 채워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참고로 OKR의 Objective는 업무의 Mission과 Vision을 세우라는 의미로, KR은 CSF와 KPI를 합친 것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두번째로는 성과관리는 절대 HR부서만 stand-alone으로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인사의 목표는 경영 전략의 목표의 하위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HRM의 목표에 따라 HRD의 계획이 세워지지요. 또한 급여 등 노무는 물론이고 보상을 위해서도 재무 목표와 연계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HR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Align"입니다. OKR에서는 상위목표와 하위목표의 align만 강조하지만 사실은 Cross-function간의 align이 빠져있다는 것이 OKR의 가장 큰 빈 틈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과관리 솔루션들.. 레몬베이스나 Hirebook, Performance plus 등의 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있는 툴들은 협업도구나 시각화도구에 가깝다는 것이 저의 생각인데 이건 별도의 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여튼 위의 문제를 그럼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 간단한 팁을 드리자면, 첫째로는 OKR를 세우는 첫 단계로 Align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과 경영 전략 수립이 선행되어 있음은 물론 내재화까지 되어야 합니다.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OKR 도입 프로젝트를 마치면 절반 이상이 이 전처리 단계입니다. 그리고 KR설정 뒤에 이것을 실행할 Initiative와 그것을 관리할 프로토콜(스크럼 등)을 셋팅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OKR을 다른 경영 지표와 연동해야 합니다. 옛날처럼 ERP형태로 할 수는 없지만 API를 받아 연결할 수도 있고, 솔직히 스타트업이면 엑셀 수준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협업 도구 같은 형태가 아닌 Scorecard로 가야합니다. 인사관리론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신기하게 다들 올드하게 취급하더라구요.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요.
셋째, Scorecard 개념이 나왔다면 당연히 BSC 관점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대부분 OKR이라 하면 Align만 생각하는데 Balancing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왜 중요한지는 Kaplan&Norton 교수님이 정말 숱하게 말씀하셨으니 다들 리마인드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OKR에서 이 Balancing 문제가 논의되지 않는 다는 것이 늘 의구심이 들었고, 제 고객들에게 OKR 코칭을 할 때는 KR을 4개를 잡아보고 각각 BSC의 4가지 관점으로 작성을 해보시도록 하는 활동도 해봅니다.
성과 문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경영 활동의 중추를 세우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만큼 어렵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제품을 만드는 일이 대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성과중심의 조직문화를 세우는 일이 대내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